발레 <지젤 >의 구상은 당대의 사상적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각별히 주목할 점이다. ‘자연으로의 회귀’ - 문학이 소박한 농민들의 삶에 주목하던 경향 -와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매혹’ - 달빛 아래 폐허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을 그린 고딕적 환상성 -이 그것이다. 이는 도시 문명의 소란과 타락 이전의 순수하고 진실한 삶을 되찾으려는 열망이며, 지나치게 물질적이고 타성에 젖은 현실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이자, 꿈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음악은 당시 유수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에게 맡겨졌다. 아당은 그 전에 필리프 타글리오니(Philippe Taglioni)의 안무로 초연된 <도나우의 딸(La Fille du Danube)>을 통해 이미 발레 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안무는 파리 오페라 발레의 수석 발레 마스터이자 이미 <절름발이 악마(Le Diable boiteux)>와 <거미(La Tarentule)> 등을 선보인 바 있었던 장 코랄리(Jean Coralli)와 주역 무용수에 대한 애정으로 참여한 쥘 페로(Jules Perrot)가 맡아 크게 기여했다. 이렇듯 여러 예술가의 결합은 낭만 발레의 정수를 탄생시켰다.
1942년, 당대 최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세르쥬 리파르(Serge Lifar)는 <지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처럼 춤이 극적인 서사를 완벽히 표현하는 발레는 또 없다. 춤은 단순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이며, 오직 움직임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그 어떤 예술에서도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강렬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젤>이 시대를 초월하여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춤과 그 안의 모든 몸짓이 무대 위에서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 숭고한 영혼의 언어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낭만 발레 전통을 확립한 <지젤>
발레 <지젤>의 초연은 1841년 왕립 음악원(Academie royale de Musique) - 오늘날의 ‘파리 오페라(Opera de Paris)’의 전신 -에서 이루어졌다. <지젤>은 서양 고전 무용사에서 새로운 미학의 장을 열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토 슈즈(chaussons de pointes, 발끝으로 서기 위해 착용하는 발레용 특수 신발), 아라베스크(arabesques, 몸을 한쪽 다리로 지탱하며 다른 다리를 뒤로 뻗는 대표적인 발레 자세), 그리고 긴 흰색 튀튀(longs tutus blancs, 낭만발레에서 착용하는 길고 흰색의 겹겹이 된 발레 치마), 이 세 가지 요소는 환상적이면서도 투명한 세계를 그려내며 낭만주의 발레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시골 처녀 지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모든 것은 마치 동화처럼 시작된다. 사랑스러운 시골 처녀 지젤은 한 젊은이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가 입은 소박한 농부의 옷 이면에는 사실 ‘공작(duc)’이라는 귀족의 신분이 숨겨져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는 이미 약혼한 몸, 그러니 지젤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으로 미쳐버리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녀의 영혼은 ‘윌리(Wilis)’라 불리는 존재들, 즉 부정한 연인에게 버림받고 죽은 젊은 여인들의 영혼에게 받아들여진다. 지젤이 알브레히트를 죽음으로 끌어들여 복수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과 용서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애달픈 긴장 속에서 펼쳐진다.

발레리나 한나 오닐과 리스 클라크의 ‘지젤’ - 섬세함과 긴장의 균형
이번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Opera Garnier)에서 열린 파리 오페라 발레의 시즌 개막 무대에서는,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가 1887년에 재구성한 버전을 파트리스 바르(Patrice Bart)와 외젠 폴리야코프(Eugene Polyakov)가 각색한 버전으로 상연되었다. <지젤>이 파리 오페라 발레의 2025-2026 시즌 오프닝으로 선택된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이는 새로운 예술감독 호세 마르티네스(Jose Martinez)의 첫 번째 시즌을 개막하는 상징적 선택이기도 하다. <지젤>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세련된 무대 미학과 치밀한 음악적 해석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필자가 참석한 10월 17일 공연에서는 한나 오닐(Hannah O’Neill)이 지젤을, 리스 클라크(Reece Clarke)가 알브레히트를 맡아 호흡을 맞췄다. 리스 클라크는 런던 로열 발레의 수석 무용수로, 지난 시즌<오네긴(Oneguine)> 초청 출연이 무산된 아쉬움을 이번 무대에서 만회했다. 첫 등장부터 균형 잡힌 라인과 고급스러운 움직임으로 무대의 중심을 확실히 장악한 리스 클라크의 알브레히트는 절제된 감정 속에서도 진정성이 묻어났다. 반면 한나 오닐의 지젤은, 안정된 기교와 우아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흐름의 강도가 조금 미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막의 순수함은 그런대로 무난한 <지젤>로 기억된다. 그러나 2막의 격정과 용서로 이어지는 내면의 깊이는 설득력을 발휘하기에는 좀 역부족이었다. 현재로서는 좀 온도 차가 나는 두 무용수의 호흡은 앞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번 무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끈 부분은 윌리(Wilis) 군무진의 완벽한 일체감이었다. 가벼운 발끝 동작과 서늘한 선율 위에 펼쳐진 그들의 군무는 초현실적 긴장감을 자아냈고, ‘낭만 발레의 본질’을 재차 상기시키며 이번 공연의 백미로 기억된다. 엘로이즈 부르동(Heloise Bourdon)의 미르타도 주목할 만하다. 냉정하고 위엄 있는 그녀의 존재감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해주었다. 이번 무대는 지젤 역을 맡은 한나 오닐의 무대 장악력이 다소 부족했던 점은 다소 아쉬웠지만, 프랑스 발레의 정통성과 국제적 감각이 조화된 ‘품격 있는 개막 공연’으로 기억된다. 특히 한나 오닐과 리스 클라크, 두 무용수가 다시 런던 무대에서 이 작품을 함께 공연할 예정이라는 점은, 이 듀오의 예술적 여정이 아직 현재 진행 중임을 알리며 기대를 자극한다.
파리=박마린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