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품을 나란히 전시해 내년에 본격화될 HBM4(6세대) 시장 선점 '신경전'을 벌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 반도체 전시회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HBM4 실물을 전시장 전면으로 내세웠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든 인공지능(AI) 칩의 필수 메모리다.
특히 HBM4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탑재돼 HBM4가 새로운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현재는 HBM3E(5세대)가 시장 주류를 점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HBM4의 공급 능력이 향후 시장 경쟁에서 핵심 차별화 요소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트렌드포스도 내년 하반기에 HBM4가 HBM3E를 제치고 주류 설루션(솔루션)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AI 시장 부상으로 HBM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제품이 된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큰손' 엔비디아를 겨냥한 HBM4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날 SK하이닉스는 HBM 전시 공간을 부스 중심에 배치했다. HBM 시장 리더십을 HBM4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업계에선 HBM 시장의 막강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서도 HBM4 샘플을 전시했다. 당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부스를 찾아 "HBM4를 잘 지원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최종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메모리 3사 중 가장 먼저 HBM4 양산 준비를 마치고 엔비디아와 막바지 물량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BM3E에서 주도권을 내준 삼성전자는 HBM4에서 반등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10나노급 5세대 1b 공정을 HBM4에 적용하는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과 달리 다음 세대인 1c 공정을 적용해 제품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또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와 HBM3E 공급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HBM4 공급을 위한 인증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HBM4, 커스텀(맞춤형) HBM 등 신시장에 대해서는 작년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질 없이 계획대로 개발하고 양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HBM4 출시가 시작되면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도 높아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SK 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 순이었다. 다만 내년 HBM4 양산 공급이 본격화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0%까지 높아질 수 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