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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2%의 벽, 기금화로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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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2%의 벽, 기금화로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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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기금화 이슈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퇴직금제도의 강제 전환 문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은퇴 이후의 노후 소득을 위한 우리 퇴직급여보장제도는 현재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로 이원화돼 있다. 2005년 퇴직연금제도 도입 이후 대규모 사업장 위주로 퇴직연금으로 전환됐으며, 중소·영세 기업 대부분은 여전히 퇴직금제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강제 전환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로 퇴직연금의 기금화가 대두된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적립금의 사외 적립 여부라 할 수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확정급여(DB)형이든 확정기여(DC)형이든 기업(사용자)으로부터 분리돼 의무적으로 사외에 적립된다. 적립된 자금은 외부 금융기관을 통해 관리되므로, 기업의 도산 여부와 무관하게 근로자는 퇴직급여를 확보할 수 있다.


    20년째 유보된 퇴직연금 의무 전환

    그에 비해 기존 퇴직금은 사외 적립이 의무가 아니어서 기업 내부에 유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은 실제로 내부에 적립되지도 않는다. 중소·영세 기업 대부분은 근로자의 퇴직금을 회계장부상 충당금으로만 계상한 채 운전자금으로 소진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장부상으로만 존재할 뿐 기업이 실제 보유하고 있지 않은 부채라는 뜻이다. 이러한 기업의 경영이 악화하거나 도산하면 미지급된 퇴직금은 그대로 임금체불이 된다. 2005년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목적이 ‘기업 도산으로부터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임금체불액의 40% 이상이 퇴직금 체불이라고 한다.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78%가 여전히 퇴직금제도임을 감안하면, 기업의 도산으로부터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한다는 제도 취지는 20년째 유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퇴직연금제도에서 강제하는 사외 적립 의무 자체가 영세 기업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무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제도 도입 당시 강제적 제도 전환 대신 ‘선택적 도입’을 허용했고, 그 유예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유예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퇴직급여제도의 강제적 제도 일원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시점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기존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강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사업장부터 시행하고, 규모가 작을수록 3~5년의 유예를 더 주는 단계적 전환이다. 영세 기업이 체감하게 될 재무적 부담을 고려하면 일견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제도 취지에는 오히려 역행하는 정책 방향이다.





    국내 첫 기금형 퇴직연금 ‘푸른씨앗’



    기업 도산에 따른 수급권 보호가 시급한 곳은 대규모가 아닌 중소·영세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몇 년의 추가 유예를 준다고 해서 그동안 충분한 재무 여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제적 제도 전환에 필요한 것은 의미 없는 연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이다.

    따라서 제도 일원화는 ‘전면 시행’을 전제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병행해 조속히 추진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도입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을 활용해 강제 전환 기업의 재무적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현재 30인 미만 규모의 영세사업장만 가입할 수 있고, 정부는 사용자 부담금의 10%를 3년간 보조하며 운용수수료를 4년간 면제하고 있다. 이를 강제 전환에 따른 재무 위험이 현실적인 기업 규모, 예를 들면 50인 미만 등으로 사업장 범위를 확대하고 정부 지원 수준을 상향한다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강제적 제도 전환에 따른 실질적인 완충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으나, 최근 강조되는 퇴직연금제도의 공적 역할을 감안하면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의 공공화는 이번 정부의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이때 공공화의 의미는 사적연금을 공적연금화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연금제도의 사각지대같이 공공성이 강조되는 영역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 같은 공적 역량을 확대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공은 민간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사회복지제도가 효율성을 강조하면 민영화되는 이유다. 퇴직연금 시장은 처음부터 민간의 영역이었다. 민간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공공의 이익 극대화라는 당위성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위성이 견지될 수 있도록 대상은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개입의 범위는 가능한 제한돼야 한다.

    퇴직연금 수익률, 임금 상승률에도 못 미쳐

    공적 운용의 대상이 퇴직연금 시장 전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공성이 크지만 시장성이 떨어지는 중소·영세 기업의 퇴직연금 시장으로 한정하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수반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국민연금제도의 국민연금기금과 동일한 역할과 위상의 ‘공적 운용관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강제적 제도 전환에 따른 정부의 재정 지원은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요구된다. 사용자 측면에서는 법인세 감면, 저리 융자, 부담금 일부 보조 등이 필요하다. 근로자 측면에서는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정부 지원금을 퇴직연금 계좌로 환류시켜 수익률 측면에서 복리 효과를 강조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하지만 근로자 입장에서 제도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은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이다.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의 최근 10년 평균 수익률은 2.07%에 불과하다.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존 퇴직금제도의 근로자가 체감하는 수익률은 기업이 도산하지 않는다면 정확히 임금 상승률이 된다. 평균적으로 4% 중반을 상회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수익률 4% 중반의 제도에서,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수익률이 2%밖에 안 되는 제도로 강제 전환되는 셈이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근로자 개개인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최소한 임금 상승률 정도의 수익률은 달성할 수 있는 운용 환경 또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강제 전환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지점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강제 전환의 대상이 되는 중소·영세 기업 대부분은 DC형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DB형은 사용자의 부담금 납부 이후에도 운용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추가 납부 등 기업의 재무적 부담이 보다 크기 때문이다.




    적립금 집합 운용으로 규모의 경제 달성

    따라서 수익률 제고를 목적으로 추진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DC형 중심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DB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운용위원회 설치와 투자정책서(IPS) 작성, 최소 사외 적립 의무 강제 등 최근 도입된 제도적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여기에 일임투자 방식에 의한 적립금 운용이 허용된다면 기금형 지배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

    DC형 퇴직연금에서 기금형 지배구조가 수익률 제고에 효과적일 수 있는 근거는 규모의 경제다.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소규모의 DC 적립금을 집합(pooling)해 대규모로 운용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한 수익률 제고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DC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투자 판단을 허용하지 않고 외부 전문가가 집합해 운용하며, 이러한 운용의 결과는 은퇴 시점의 개인에게 그대로 귀속시키는 구조다. 이를 집합운용 DC(Collectively Invested DC)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금형 퇴직연금이라 하면 떠올리는 제도 형태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 집합운용 DC 방식의 DC형 퇴직연금기금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집합운용 DC가 기금형 퇴직연금의 일반적 형태는 아니다. 집합운용 DC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소 수익 보장 같은 기술적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적립금 운용에서 개인의 선택은 완전히 배재되지만 운용의 성과는 은퇴 시점별로 개인에게 그대로 귀속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예를 들어, 시장 상황에 따라 특정 은퇴 시점 또는 특정 가입기간의 근로자에게는 마이너스 수익률의 일시금이 지급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퇴직급여가 종신으로 지급되는 연금(annuity)이 아닌 은퇴 시점에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집합운용 DC가 가입자 간의 연대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분산시키는 유럽 연금선진국의 CDC(Collective DC) 제도와 구분되는 이유다. 집합운용 DC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과 같이 공공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공공형 퇴직연금에서만 작동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금 간 수익률 경쟁 치열한 호주

    DC형 퇴직연금기금의 보다 일반적인 형태는 개인형 DC(Individual DC·IDC)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모색할 때 가장 많이 참조하는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이 개인형 DC 형태의 퇴직연금기금이다. 기금 선택제(Super choice)하에서 근로자는 특정 기금(fund)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개인형 DC 기금은 가입자에게 서너 개의 운용 상품(option)을 제시하고, 근로자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 DC 적립금을 운용하게 된다. 상품을 선택하지 못하는 근로자에게는 기금의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인 마이슈퍼(MySuper)가 자동으로 적용된다. 이러한 개인형 DC 방식의 기금형과 우리 계약형 DC의 차이점은 수탁법인의 역할에 있다.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에서 퇴직연금사업자인 운용관리기관의 역할은 단순히 상품을 소개하는 판매사의 역할인 반면, 개인형 DC에서 기금의 운용 주체인 수탁법인은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상품을 직접 설계하고 관리하는 운용사의 역할이다. 이 둘 간의 차이는 명확하다. 특정 상품의 성과가 저조한 경우 그 책임이 우리의 경우 상품 선택을 잘못한 근로자 개인에게 있지만 호주의 경우 수탁법인의 자산운용 역량에 있으므로 기금 간 경쟁의 비교 기준이 된다.

    특히 개인의 선택이 없는 디폴트옵션의 성과는 오롯이 기금의 운용 역량을 반영하므로 기금 선택의 보다 직접적인 기준이 된다. 이러한 디폴트옵션의 비교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호주는 하나의 기금은 오직 하나의 디폴트옵션만을 제시토록 하고 감독기관(APRA)이 그 성과를 취합해 단일 사이트에 이해하기 쉽게 정기적으로 공시한다. 이를 마이슈퍼 제도라 한다. 호주 슈퍼애뉴에이션이 기금 간 경쟁을 바탕으로 운용수익률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었던 근본 기제라 할 수 있다.




    기금 수탁자 책임 명문화 필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금형 도입으로 수익률 제고를 담보할 수 있느냐 하는 회의론이고, 둘째는 일본의 AIJ 사태와 같은 대리인 문제의 심화다. 두 가지 모두 기금의 운용 주체인 수탁법인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다.




    앞서 살펴본 호주 사례와 같이 수익률 제고는 기금 간 경쟁의 산물이며, 이러한 경쟁 구도 조성은 수탁법인의 지배구조와 연관된다. 기업이 주체가 돼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로 수탁법인을 설정하는 유형 외에 금융기관이 주도해 주식회사 형태의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영리형 기금도 반드시 허용돼야 하는 이유다.

    기금형 제도에서 기금의 법적 실체는 수탁법인이다. 기업과 수탁법인은 신탁 관계이며, 따라서 자금의 수탁자인 수탁법인에는 엄중한 수탁자책임(fiduciary duty)이 부과돼야 한다. 단순히 부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가입자 최선의 이익을 위한 신의성실의무와 전문가적 역량을 제공해야 하는 고도의 주의의무가 부과된다.

    하지만 신탁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의 경우 금융기관의 수탁자 책임은 다분히 형해화된 경향이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운영 구조를 감안할 때 기금 수탁법인에는 실질적인 손해배상까지 연결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수탁자 책임이 부과돼야 한다. 이는 '신탁법'에서 규율하는 일반적인 법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관련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에서 법 본문에 기금 수탁법인의 수탁자 책임을 별도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과 관련해 다양한 주장과 법안이 제시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의 활발한 논의를 거쳐 어떤 합의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겠으나,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자칫 제도 도입의 목적 자체가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크다. 오랜 논의를 거쳐 도입된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이 오히려 더 높아진, 그런 제도 개편이어서는 곤란하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목적은 수익률 제고다. 이러한 제도 목적이 온전히 달성될 수 있는 방향으로 수탁법인의 유형과 지배구조가 설계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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