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엔 사무실 TV에서 국민체조 음악이 흘러나왔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원들은 연병장에 모인 군인처럼 체조를 했다. ‘군대 문화’는 현대차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였다.
이랬던 현대차가 달라진 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등장한 2019년부터다. 그해 3월 복장 자율화를 도입해 ‘넥타이 부대’를 없애더니, 10월에는 10대 그룹 중 최초로 정기공채를 폐지했다. 순혈주의가 깨지자 경쟁사 출신은 물론 외국인 임원이 주요 보직을 맡기 시작했다. 근면보다 성과와 효율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됐다. 작년 말 일본 닛산 출신 미국인(호세 무뇨스 사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건 달라진 현대차 문화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모습으로 평가받았다.

◇“투자자 신뢰·브랜드 파워 개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일 ‘2025 세계 최고 기업’ 평가에서 현대차를 국내 기업 중 가장 높은 33위로 올리면서 핵심 이유로 높은 임직원 만족도와 낮은 자발적 이직률을 꼽았다. 현대차 국내 임직원의 자발적 이직률은 0.39%로, 5% 수준인 국내 제조업체 평균에 비해 크게 낮았다. 정 회장이 도입한 새로운 문화가 직원 만족도를 높였고, 이게 다시 현대차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얘기다.현대차는 이번 평가에서 지난해(192위)보다 159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일본 도요타(48위)를 제쳐 아시아 완성차 업체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상위 100대 기업에 포함된 국내 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타임은 2023년부터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와 함께 매년 전 세계 최고 기업 1000개를 선정하고 있다. 임직원 만족도, 기업 성장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이 평가 대상이다. 전 세계 2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최근 3년간 매출 데이터, ESG 종합지수 등 세 가지 지표를 동일한 비율로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평가 결과는 투자자 신뢰 강화와 브랜드 파워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AAM 등 신사업도 강세
산업계에서는 현대차의 가파른 순위 상승은 정 회장 취임 이후 임직원 만족도 개선과 지속적인 매출·영업이익 증대, ESG 노력 등이 성과를 낸 결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매년 하는 임직원 업무 만족도 조사에서 현대차는 2024년 역대 최고점인 79.4점을 기록했다.정 회장 취임 후 높아진 위상과 성과도 한몫했다. 정 회장은 하이브리드카 등 친환경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 판매를 늘려 현대차의 ‘몸집’과 ‘내실’을 동시에 불렸다. 2022년 142조2000억원이던 현대차 매출은 2024년 175조2000억원으로 2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9조8000억원에서 14조2000억원으로 45% 급증했다.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는 ESG 분야에서도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는 ‘204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국 미국 인도 등에서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맺고 전 사업장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추진 중이다. 선임사외이사 제도 도입과 주주 추천 사외이사제 운영 등 이사회 독립성도 강화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8월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중립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신사업 투자도 늘리고 있다. 자율주행, 로봇, 미래항공교통(AAM) 등에서 현대차는 세계에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번 평가에서 전체 1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시가총액 4조달러(약 5686조원)를 돌파한 엔비디아가 차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2위), 구글 모기업 알파벳(4위), 아마존(5위) 등 정보기술(IT)·테크 기업이 강세를 보였다. 작년 ‘세계 최고 기업’ 1위를 차지한 애플은 매출 증가세 둔화로 순위권(1000위) 밖으로 밀려났다.
김보형/신정은 기자 kph21c@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