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와 일맥상통하는 로마 신화에는 그리스 신화에 없는 신이 등장한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한 얼굴은 과거를, 다른 하나의 얼굴은 미래를 바라본다. 그가 문과 문 사이의 신으로 불린 이유다. 문턱은 언제나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거리를 걸을 때면 이 야누스의 시선이 도시에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고대의 폐허와 현대의 디자인, 천년 바람에 닳은 대리석의 질감 위에 반사되는 모던한 유리의 결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바티칸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금속 구체인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천체 안의 천체'는 그 상징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수천 년 된 석조 벽 사이에서 황금빛 구체가 반짝이며 회전할 때 로마는 ‘영원한 도시’이면서도 ‘미래를 실험하는 도시’가 된다.

이 감각은 럭셔리 브랜드의 본질과 닮았다. 럭셔리는 언제나 ‘과거의 장인정신’과 ‘현재의 감각’ 사이에서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 럭셔리다. 그래서 진정한 명품은 느리지만 가장 빠르고, 고전적이지만 가장 현대적이다.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행보를 보면 이 야누스적 시선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구찌가 아디다스와 손잡고 구찌 특유의 클래식한 GG 모노그램과 대중적인 스포츠 로고를 결합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전통의 상징 같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젊은 세대의 ‘핫한 코드’로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협업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유산의 현대화(現代化)'다.
루이비통은 20여년 전 세계적 화제를 모았던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협업 제품을 다시 내놨다. 그때와 다른 것은 시대다. 'Y2K 복고'라는 트렌드의 한가운데서 그들이 만든 컬러풀한 모노그램은 이제 '뉴 클래식'이 된 것이다. 보테가베네타의 '더 낫(The Knot)'도 1970년대 디자인을 바탕으로 매 시즌 다른 소재와 구조로 변주한다. MZ세대의 미니멀한 취향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이 세 브랜드의 공통점은 하나다. 트렌드를 읽되, 뿌리는 잃지 않는다는 것. 럭셔리 브랜드의 혜안이다. 트렌드는 바람이고 철학은 뿌리다. 바람의 방향을 읽지 못하면 시대에서 도태되고 뿌리를 놓치면 본질이 사라진다. 진정한 브랜드는 이 두 세계를 동시에 보는 눈, 야누스의 시선을 지닌다.
이제 럭셔리의 성공은 단지 '유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MZ세대의 감성을 읽어내되 거기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대담하게 변주하되 그 중심에는 언제나 브랜드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로마의 야누스는 두 얼굴로 세상을 본다. 하나는 전통을, 하나는 혁신을 향한다. 그리고 그 두 시선이 한 축에서 만나 균형을 이룰 때 브랜드는 유행을 넘어 시대의 상징이 된다.
럭셔리의 혜안이란 결국 과거를 존중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트렌드를 향한 한쪽 눈과 본질을 응시하는 다른 눈, 그 두 눈이 함께 깨어 있을 때 브랜드는 시간의 강을 건너도 절대 낡지 않는다.
2026년의 트렌드 키워드가 알고리즘을 통해 수도 없이 강요되는 계절이 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뿌리 약한 나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윤경 럭셔리인사이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