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브랜즈와 깊이 얽혀
클리블랜드에 본사를 둔 퍼스트브랜즈는 약 5년 전 크라운그룹에서 사명을 변경한 뒤 부채를 동원해 여러 자동차부품 제조사를 잇달아 인수해 왔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지난달 말 결국 붕괴했다. 파산법원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퍼스트브랜즈는 100억~500억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었으며 자산은 100억달러 미만에 불과했다. 막대한 부채 규모는 월가에 충격을 줬고, 퍼스트브랜즈 인수 자금을 댄 대출기관 사이에선 불안이 번졌다.
특히 제프리스는 퍼스트브랜즈의 파산 신청으로 막대한 잠재적 손실에 직면했다. 제프리스는 퍼스트브랜즈의 단순 채권자가 아니라 사업의 핵심 현금 흐름에 깊숙이 관여한 금융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제프리스는 자회사 포인트보니타캐피털을 통해 퍼스트브랜즈가 대형 유통업체에 물건을 납품하고 받아야 할 외상대금(매출채권)을 미리 사주는 ‘팩토링’ 사업을 운영하며 현금 흐름 해결사 역할을 했다. 포인트보니타는 퍼스트브랜즈와 체결한 팩토링 계약에서 7억1500만달러 규모의 매출채권을 인수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부실화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모신용 부실이 근본 원인
사모신용은 은행에 비해 금리가 다소 높지만 더 빠르고 유연하게 자금을 공급할 수 있어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은행은 엄격한 규제 아래 대출을 심사하지만, 사모신용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투명성이 낮다. 피터 코리 페이브파이낸스 수석전략가는 “사모신용 시장은 워낙 불투명하기 때문에 거대한 공포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 사모신용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달러에서 2024년 초 약 1조5000억달러로 확대됐으며, 2029년까지 2조6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 리스크 확산
JP모간체이스도 사모신용 부실로 대규모 대손상각 처리를 해야 했다. JP모간은 자회사를 통해 퍼스트브랜즈와 비슷한 시기에 파산한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홀딩스에 대규모 사모신용을 내줬다.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4일 트라이컬러 사례를 언급하며 “바퀴벌레를 한 마리 봤다면, 아마 그 근처에 더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업계 전반에 숨겨진 신용 리스크가 더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라고 했다. 월가에서는 다른 지역은행도 신용 리스크를 겪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지역은행 자이언스뱅코퍼레이션은 자회사 캘리포니아뱅크앤드트러스트가 취급한 상업·산업 대출 5000만달러 규모를 손실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대출 심사 기준이 다소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금융위기로 번질 만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임다연 기자
▶사모신용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 금융사가 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것. 직접 대출뿐 아니라 매출 채권 유동화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SVB 사태
2023년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보유 중이던 국채 가격 하락으로 큰 손실을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발생해 파산했고, 그 여파로 미국 내 지역은행 전반에 파산 우려를 키운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