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 '업무'에 엄밀하게 해당하지 않는 행위라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재개발추진위원장 신모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신씨는 재개발 사업의 절차를 두고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주협의회 회장과 의견이 달라 대립하던 중이었다. 2019년 9월 지주협의회장이 지주들에게 재개발추진위의 창립총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 3개를 영등포구 곳곳에 설치하자 신씨는 고정용 끈을 과도로 잘라 내 현수막을 뜯어냈다.
검찰은 신씨의 행위가 지주협의회의 홍보 업무를 방해했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지주협의회장이 현수막을 설치한 것이 "재개발추진위의 창립총회를 방해하고자 하는 내용일 뿐, 지주협의회의 입장을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며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지주협의회장이 "회원을 더 확보하고 자신의 입장을 홍보하기 위해 그 반대 조직에 가담하지 말 것이나 그 구성을 위한 총회에 참석하지 말 것을 권유한 셈"이라며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1심의 판단이 맞는다며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업무'란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한다"며 "'직업이나 사회생활상 지위에 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단순한 의사 표현의 일환으로서 일회적 또는 일시적으로 현수막 등을 설치해 어떤 사실이나 의견 등을 알리는 것'은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인 '업무'라고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대법원 판례상 현수막 설치 행위가 업무방해죄상 업무에 해당하려면 "계속성을 갖는 본래 업무수행의 일환으로서 또는 그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행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판단하려면 업무의 종류와 성격, 현수막 설치 시기와 장소, 기재 내용과 업무 사이의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현수막에 게재된 글이 지주협의회의 본래 업무(협의회의 구성·운영·활동,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계획 등)를 지주들에게 알리는 내용이 아니고, 일회적으로 지주들에게 주민총회에 불참할 것을 권유하는 입장을 알리는 것을 두고 '지주협의회장으로서 본래의 업무수행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서 이뤄진 사무'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서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시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