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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이 선사한 부드러움...손열음의 화려함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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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이 선사한 부드러움...손열음의 화려함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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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필하모닉이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이 악단은 런던 심포니, BBC 심포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 필하모닉과 함께 런던의 5대 악단인 ‘빅 파이브’로 꼽힌다. 대중에겐 영화 ‘반지의 제왕’의 음악으로 이미 음색이 친숙한 악단이다.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 악단이 연 공연의 지휘자는 에드워드 가드너. 2021년부터 런던 필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 6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며 한국 관객들과 이미 소통했다. 합창석까지 가득 전석을 관객으로 채웠던 이번 무대에선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합을 맞췄다. 런던 필하모닉이 추구해온 균형미와 손열음의 뚜렷한 소리, 테크닉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관심사였다.

    손열음이 만든 음표의 분수, 소리가 통통


    공연은 멘델스존의 ‘바다의 고요함과 즐거운 항해’로 막을 올렸다. 동명 제목의 괴테 시를 읽고 감명받은 멘델스존이 쓴 연주회용 서곡이다. 런던 필이 그린 바다는 대자연의 웅장함이 드러나기보단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쪽에 가까웠다. 클라리넷의 구수한 소리 뒤로 현이 조그마한 파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맑고 온화한 바다를 그려냈다. 바이올린이 그린 얕은 파랑이 객석을 지나갈 때면 플루트가 햇살처럼 솟아나 포근한 온기를 남겼다. 가드너의 백발도 노란 조명을 받아선지 햇살을 담은 윤슬처럼 은빛으로 반짝였다.




    악단이 첫 곡으로 따뜻한 음색을 선포하듯 드러낸 뒤엔 시폰 질감의 검은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손열음이 당찬 걸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협연 곡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 연주가 화려해야 맛이 사는 작품이다. 손열음의 타건엔 힘이 있었다. 건반이 튕겨 오르는 걸 억제하듯 건반을 지긋이 눌러 붙잡아뒀다가 떼는 느낌이었다. 속주와 레가토(음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치는 기법)에선 음 하나하나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힘을 고르게 분배했다. 피아니스트의 오른손에서 나온 소리가 물결처럼 찰랑일 땐 현악기가 부드럽게 뒤를 받쳤다.

    2악장에선 속도감이 한층 살아났다. 플루트와 피아노가 여유로운 전원을 그리다가 짧은 음들을 빠르게 더해 무대에 활기를 더했다. 피아니스트도 몸에 힘을 뺀 듯 여유 있게 연주했다. 마지막 3악장은 박력이 가득했다. 손열음이 쉴새 없이 건반을 몰아칠 땐 거대한 분수에서 음표들이 수압을 받은 듯 쏟아졌다. 빠른 타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힘을 끝까지 고르게 분배해내는 지구력도 돋보였다. 가드너는 손열음과 현을 번갈아 보길 반복하며 피아노의 화려함이 돋보일 수 있는 무던한 배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환호를 보냈다. 손열음은 우수가 느껴지는 차이콥스키의 ‘감상적인 왈츠’를 앙코르로 연주하며 화답했다.




    공연 2부는 런던 필하모닉의 따뜻한 음색에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레퍼토리도 작품 전반에 목가적인 분위기가 담겨 있는 브람스의 교향곡 2번으로 온기를 담기 좋았다. 1악장에서 두드러진 건 다른 현악기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견고한 소리를 꾸준히 냈던 콘트라베이스였다. 트롬본과 팀파니도 묵직한 소리를 내며 평온한 분위기에 드문드문 솟아나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감을 담았다. 2악장에선 바순과 현악기들의 멜로디가 엇갈리며 소리로 옷감을 짜는 듯했다. 옷감은 비단보단 수수한 면솜에 가까웠다.


    악단은 전반적으로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이는 대신 음량을 섬세하게 조절하며 다채로운 악기 소리를 고르게 분배하는 데 집중했다. 플루트 연주가 길어질 땐 힘이 빠지거나 금관 소리가 묻히듯 들리기도 했지만 첼로와 클라리넷이 만들어낸 3악장의 둥그스름한 소리가 매력이었다. 생기 가득한 4악장에선 동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현악기 소리가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치는 듯했다. 가드너는 공연장이란 정원을 다듬는 조경사처럼 화단 곳곳에 놓인 악기의 소리들을 조화롭게 가꿀 줄 알았다.




    교향곡 연주가 끝난 뒤 런던 필하모닉은 앙코르로 그리그 ‘오제의 죽음’을 연주했다. 오제의 죽음은 영웅이 죽을 때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 자주 쓰이는 작품이다. 숨을 다하듯 점점 죽어가는 현악기 소리가 돋보여서다. 런던 필은 부드러움의 강도를 섬세하게 나눴다. 마지막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소멸한 현악기 소리가 가늘게 이어졌다. 피아니시시모(더욱 더 여리게)보다 더 여린 ‘피아니시시시모’를 구현하는 순간이었다. 그 섬세함에 공연장 맞은편 관객이 탄식하는 소리가 포르테(세게)처럼 들릴 정도였다. 침묵마저 음악임이 명징한 마무리였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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