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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진심을 보여줄 것"…부상 딛고 돌아온 알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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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진심을 보여줄 것"…부상 딛고 돌아온 알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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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지젤 공연 때는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스트레스성 골절로 지방 투어도 함께하지 못했죠. 그래서 이번 무대는 ‘다시 선다’는 의미 그 이상이에요. 그동안 제 안에 쌓여온 질문들, 무용이란 무엇인가, 진짜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걸 알브레히트로 풀어내고 싶어요.”

    오랜만의 주연 복귀작 ‘지젤’로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36). 수석무용수로서 수많은 클래식 작품을 거쳐왔지만 이번 지젤 무대는 단순한 배역의 복귀가 아니다. 지난해 말 다리 부상 이후 6개월간의 공백을 마치고 다시금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김기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젤은 그가 클래식 발레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다. 시골 처녀 지젤이 정혼자가 있는 사실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알브레히트의 배신에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뒤 처녀 귀신이 되지만 결국 그를 용서한다는 내용.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감정의 결이 매우 섬세해 무용수들에게는 ‘어려운 발레’로 꼽힌다.

    “1막에서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속이는 장면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클래식 특유의 ‘무대적 정직함’을 요구해요. 필름 연기처럼 감정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무용수의 몸과 리듬으로 감정을 드러내야 하죠.” 그래서 그는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 장면에서 알브레히트는 어떤 사람일까.’ ‘내 감정의 방향이 맞는가.’ 그 사유가 쌓일수록 춤의 질감도 깊어진다고.


    이번 무대의 또 다른 축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과의 호흡이다. 김기완은 오는 11월 13일과 15일 박세은과 무대에 선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발레 동기이자 오랫동안 ‘언젠가 함께 공연하자’고 약속했던 사이다. “세은이와 지난 1월에 한 갈라 무대에서 조지 발란신의 ‘주얼스’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제 부상으로 결국 못 했어요. 그래서 이번 지젤은 서로에게 의미가 더 커요. 전막 작품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춤을 맞추는 사이를 넘어 서로의 예술 언어를 나누는 관계거든요. 좋은 파트너십은 ‘누가 더 보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이 함께 빛나느냐’의 문제죠. 무대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결국 서로뿐이에요.”

    김기완은 감정의 움직임을 신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언어를 최대한 절제한다. “알브레히트가 죄책감에 휩싸인다고 해서 그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아요. 몸의 흐름, 시선, 호흡 속에 녹여야 하죠. ‘슬프다’라는 감정에 텍스트를 붙이는 순간 감정이 단조롭게 변해요. 생각보다 감정은 말보다 몸에 더 가까이 붙어 있거든요.” 최근 김기완은 키로프발레단의 콘스탄틴 자클린스키의 영상을 자주 본다고 했다. “특별한 고도의 테크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음악과 몸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술보다 감정의 결합이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주더라고요.”


    그의 동생 김기민 역시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수석무용수다. 김기완은 “형제라서가 아니라 발레를 하는 동료로서 서로에게 큰 자극을 준다”고 했다. “기민이는 제 단점을 정확히 짚어줘요. 저도 그렇고요. 서로 직설적으로, 그 어떤 선생님보다도 냉정하게 조언해요. 제가 지난 부상으로 힘들 때 ‘기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면서 버텼어요.”

    김기완은 자신을 ‘심플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오랜 훈련에서 비롯된 단단한 자기 중심에 있었다. “무용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함이에요. 특별한 걸 보여주기보다 늘 같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무대를 지켜가는 것. 어렵지만 예술가로서 견지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는 관객과의 감정 교류를 ‘공연의 완성’이라 부른다. “관객이 무대에서 뭔가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해요. 꼭 좋은 감정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관객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게 가장 안 좋은 공연이에요. 제가 지젤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게 수십 가지일 텐데 그중 하나라도 객석에 전달된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공연을 반복해도 그는 늘 새로움을 느낀다. “‘호두까기 인형’을 100번 넘게 해도 매번 달라요. 같은 음악, 같은 동작인데도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발레는 ‘살아 있는 예술’이에요.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진심을 보여주는 게 이 장르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국립발레단의 지젤은 다음달 12일부터 16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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