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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룹 UN 출신 최정원 씨가 관련된 이혼 소송 항소심이 1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부정행위'의 법적 경계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최 씨의 행위가 부부의 정조의무를 저버린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정적 배신감과 법적 책임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극이 존재합니다.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혼인관계를 파탄 낸 부정 행위를 판단하는 것일까요.
법이 그은 부정행위 판단 기준
법원은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일체의 행위'를 부정행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금, 이 개념은 형법상 간통보다 넓은 범위를 포괄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단편적 행위가 아닌 관계의 전체 맥락을 봅니다. 여기에 부정행위 인정의 핵심이 있습니다.
실무에서 부정행위로 명확히 인정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관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입니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임을 알면서 차량 안에서 하의를 벗은 채 발견된 경우 법원은 성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심한 정도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아 부정행위를 인정했습니다. 장기간 모텔 투숙 기록이 있거나 상대방의 집에서 잠을 자고 출근하는 등 외박이 잦아진 경우 역시 명백한 부정행위로 판단됩니다.
둘째, 부적절한 관계의 지속성입니다. 한 판례에서는 과거 부정행위로 소송까지 갔던 당사자가 다시 "니랑 내랑 너무 하고 싶다"와 같이 성관계를 암시하는 통화를 한 행위는 그 자체로 부정행위로 인정되었습니다. 부정행위 발각 후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만남을 지속하면 불법성이 가중되는 요소로 봅니다.
부정행위로 인정되지 않는 영역
법원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영역도 있습니다. 우선 제3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기혼자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어야 한다는 '고의·과실' 요건이 필수입니다. 한 판결에서는 교제 상대가 이혼했다고 속였고, 배우자가 장기간 수감 중이었던 정황을 종합해 기혼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에 법원은 피고가 기혼 사실을 알기 전까지의 교제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출소 후 혼인 사실을 고지받은 이후의 교제는 별개로 판단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사회 통념상 용인 가능한 교제'의 범위입니다. 법원은 최근 이를 상당히 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보고싶다", "예쁘다"는 메시지와 하트 이모티콘을 주고받거나, 서로 '자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해서 곧바로 부적절한 관계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표현 방식은 개인차가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흥미로운 판례도 있습니다. 철인3종 경기 동호회 회원으로서 자주 만나 함께 운동하고, 단둘이 한라산을 등반하거나 관광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사례에서 법원은 이를 동호회 활동의 일환으로 보아 부정행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회원 간의 교류를 문제 삼는다면, 현대 사회의 정상적인 사회관계까지 제약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장소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새벽에 모텔에서 함께 술을 마셨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다면 부정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최정원씨 사례처럼 집에 방문했더라도 화장실 이용 목적으로 약 10분만 머물렀다면 정황상 부정행위로 보기 힘들다는 판단입니다.
신체 접촉의 해석도 엄격합니다. 길을 걷다 다른 길로 들어서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손을 잡거나,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에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낀 행위는 교제하는 사이의 스킨십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배우자의 강압적 추궁에 못 이겨 부정행위로 오해할 만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거나 각서나 편지를 작성했더라도, 이를 진정한 의미의 자백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례가 다수 있습니다.
감정과 법리 사이의 간극
이러한 판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법원은 배우자 아닌 이성과의 교류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행위가 혼인관계의 본질을 침해하고 부부간 신뢰를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수준에 이르렀는지 여부입니다.
여기서 배우자가 느끼는 감정적 고통과 법적 판단의 괴리가 발생합니다. 배우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도, 법원은 사회 통념상 허용 범위 내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이혼 소송 당사자들이 1심과 항소심에서 상반된 결과를 경험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부정행위를 입증하려면 단편적 정황이 아닌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CCTV 영상, 신용카드 사용 내역, 일관된 목격 증언, 명백한 성적 의도가 담긴 메시지 등 구체적 증거 확보가 관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