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냉장고 문이 닫히는 순간, 화면에 오늘의 러닝 기록이 뜬다. 이제 러너들은 어디를, 얼마나, 어떤 속도로 뛰었는지를 숏폼 영상으로 감각적으로 기록한다.
유행의 중심에는 ‘스트라바’가 있다. 러닝·사이클 등 야외 운동 동호인들의 ‘필수’인 이 앱은 운동 경험을 시각화해 기록해준다. 한국에서는 지난 3월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해외의 숏폼 트렌드가 역수입되며 오히려 인기가 더 치솟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트라바 우회 설치법이 활발하게 공유될 정도다.
전 세계로 넓히면 인기를 더 쉽게 실감할 수 있다. 현재 공식 글로벌 이용자 수는 1억5000만 명을 돌파했다. ‘피트니스 앱의 제왕’ 자리를 꿰찬 스트라바는 내년 기업공개(IPO)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스트라바가 법적 공방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스트라바, 가민에 ‘선전포고’
11일 외신을 종합하면 스트라바는 지난달 30일 스마트기기 제조사 가민을 상대로 미국 콜로라도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는 가민의 해당 제품들에 대한 영구적인 판매 금지명령과 손해배상을 요청했다.쟁점이 된 기술은 ‘세그먼트'와 '히트맵'이다. 세그먼트는 특정 구간별로 사용자 기록을 비교·분석하는 기능이고, 히트맵은 사용자의 활동 데이터를 시각화해 인기 코스를 보여주는 기능이다. 스트라바는 가민의 스마트워치·사이클 컴퓨터·가민 커넥트 플랫폼이 자사의 핵심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회사가 오랫동안 뗄 수 없는 공생 관계였다는 점이다. 가민 기기로 운동을 기록하면 자동으로 스트라바에 업로드되고, 스트라바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그먼트와 히트맵을 분석해 사용자 간 경쟁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왔다. 과거 가민은 스트라바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어떤 계기로 양사가 갈등을 겪게 된 걸까.

○“10년 전 기능인데”…업계는 갸웃
피트니스 테크 전문가 DC 레인메이커는 스트라바의 이번 소송을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가민은 스트라바가 특허를 출원하기 전인 2013년과 2014년 이미 히트맵, 세그먼트 기능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이 부분에서는 스트라바의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는 이유다.그렇다면 왜 10여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문제를 삼았을까. 소송의 배경에는 특허와 다른 차원의 현실적인 갈등이 숨어 있었다.
가민은 지난 7월 파트너 앱 개발사들에게 “모든 활동 게시물·화면·그래프·공유 카드 등에 가민 로고를 표시하라”는 새로운 데이터 연동 가이드라인을 통보했다. 따르지 않으면 11월 1일부터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가민 기기에서 생성된 운동 데이터가 스트라바에 올라갈 때 ‘이 데이터는 가민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출처를 명시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그러나 스트라바는 이를 단순한 출처 표기가 아니라 ‘사용자의 운동 데이터 위에 가민의 광고를 덧입히는 행위’로 봤다. 이에 “이건 노골적인 광고 행위”라며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스트라바 역시 지난해 다른 개발사가 스트라바의 데이터를 활용·분석하는 것을 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편의보다 데이터 주권에 몰두하는 회사에 분노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일부는 “스트라바를 쓰는 이유는 가민 연동 때문”이라며 “두 회사가 싸운다면 스트라바 프리미엄 구독을 해지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기업 ‘무기’된 사용자 데이터
이번 싸움은 단순한 기술 분쟁이 아니다. 본질은 데이터 주도권을 둘러싼 충돌이다. 오늘날 운동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AI 알고리즘, 광고 타게팅과 직결되는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사용자의 정보는 플랫폼의 미래 수익과 직결돼 있다. 데이터가 곧 플랫폼의 무기가 된 셈이다.상장을 앞두고 시장을 넓혀가는 스트라바는 이제 ‘데이터의 허브’에서 ‘데이터의 주인’으로 도약하기 위해 전략을 바꾸고 있다. 그 선택이 수익을 강화할지, 되려 벽을 세울지는 머지않아 판가름 날 것이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