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3000원짜리 양말 8개 세트를 모양은 비슷하지만, 더 낮은 품질의 경쟁 제품이 알리, 테무에선 4000원에 판매됩니다. 대책이 없으면 더 이상 경영을 이어 나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의 공세에 국내 중소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초저가를 무기로 앞세워 국내 시장 점유율 확장에 나서면서다. 가격 공세를 따라가기 어려운 중소업체는 손실만 커지는 가격 경쟁에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초저가 중국산 제품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가운데 중소업체들은 국내 이커머스 기업 물류망을 통해 안정적 판로 넓히기로 대응에 나섰다.
10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MAU) 각각 920만명, 812만명으로 합산 수치가 1700만명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 대비 약 40% 늘었다. 여기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저가 상품에 대한 관세 면제(소액 면세) 조항을 폐지하면서 미국 시장의 문턱이 높아진 중국 업체들이 한국 등 다른 국가로 물량을 밀어내는 현상까지 심화하고 있다. 국내 중소업체는 초저가와 물량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멀티탭 제조업체 태영티에스는 중국산 저가 공세에 취약한 산업군이지만 이들의 대응은 달랐다. 전국에 뻗어있는 쿠팡의 물류망 덕을 톡톡히 본 덕에 안정적으로 판로를 넓히면서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태영티에스 본사 겸 생산공장에서는 하루 약 1만개의 멀티탭을 만든다. 주력상품은 '에코파워탭'으로 쿠팡에서만 월 10만개 이상 판매되고 있다. 올해 연간으로는 180만개를 판매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1년 쿠팡 로켓배송에 입점할 당시 에코파워탭 제품의 월 매출은 1500만원 수준에 머물렀지만, 현재는 월 11억원을 돌파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중국산 저가 멀티탭의 공세 속에서도 '안전'과 '품질'이라는 기본 원칙을 고집한 경영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고가의 자동화 설비에 과감히 투자해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화재 위험 등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만큼은 최고급 사양을 고집했다. 국내 KC인증은 기본이고, 그 이상의 자체 기준을 적용해 제품 신뢰도를 높였다.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 경쟁을 선택한 전략이 안전에 민감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태영티에스는 지난해 연 매출 75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이보다 약 50% 증가한 11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본사 근처에 제2부속창고를 증축하는 등 사업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박광우 태영티에스 대표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 속에서 우리 같은 국내 제조업체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쿠팡이 우리의 높은 제품력을 믿고 발주해 준 덕분에 가격이 아닌 품질로 경쟁할 수 있었고 현명한 고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언일전자도 높은 품질을 앞세워 쿠팡에서 고속 성장하는 국내 뷰티 디바이스 제조사로 꼽힌다. 비타민C가 함유된 특허 세라믹 발열판 등 사용자 중심의 기술이 적용된 글램팜 제품의 높은 품질을 인정하면서 판매량이 빠르게 늘었다. 쿠팡도 이에 호응해 적극 매입했다. 언일전자 관계자는 "기술 기반 K-뷰티 업체로 성장하고, 해외 뷰티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글로벌 뷰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두 업체의 공통점은 쿠팡을 통한 판로 확장이다. 쿠팡은 중국산 초저가 공세에 맞서 한국 제조업 지원을 위해 ‘품질 중심의 한국산 직매입 확대’와 중소기업 판로 확대 차원의 전국 쿠세권(로켓배송 가능 지역) 확장을 양대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중국산 초저가 공세에 맞서 지난해 한국 제조업 생태계 지원 차원에서 질 좋은 국산 제품 판매를 대폭 늘리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지난해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4년 17조원(130억달러)이었던 한국산 제품 구매 및 판매액을 2025년 22조원(160억달러)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K-제조업'과의 파트너십 강화를 선언했다. 품질 좋은 한국산 제품을 적극적으로 매입하겠다는 것으로 국내 우수 중소기업에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구감소 지역을 포함한 '쿠세권' 확장도 국산 제품의 도달 범위와 속도를 크게 높여 중소 제조사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쿠팡은 2026년까지 3조원 이상을 투입해 신규 풀필먼트센터를 대거 확충하고 자동화·예측 기술을 적용, 전국을 쿠세권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전국 단위 물류망은 국내 중소 제조사들이 한국산 제품을 신속히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채널 역할을 하며 중국산 제품 대응을 위한 최후의 방어 전선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 단위 물류망 구축은 단순한 배송 편의를 넘어 국산 제품의 도달률과 회전율을 끌어올리는 공급망 혁신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물류 투자와 한국산 매입 확대가 맞물려 중소 제조사의 성장 사다리가 촘촘해지는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