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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중 신부 "790도씨로 빛을 빚었다…세상의 절망을 녹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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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중 신부 "790도씨로 빛을 빚었다…세상의 절망을 녹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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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인드 글라스는 빛으로 그린 성경이다. 문맹률이 높던 중세 시대, 교회 창문에 성경 속 장면을 담았다. 햇빛은 색색의 유리를 통과하며 어두운 교회 내부를 밝혔다. 언어, 연령, 인종과 계층을 뛰어넘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가난한 자들의 성서'로 불렸다.


    '빛의 화가' 김인중 베드로 신부(85)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또 하나의 선을 넘어선 인물로 기록된다. 그가 수십 년 전 처음으로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유리조각을 잇는 납선을 없애고 대형 유리에 수묵화처럼 붓으로 색을 입히자 르몽드는 "동서양을 초월하는 범세계적 기법"이라고 극찬했다. 지금까지 프랑스 중남부 브리우드의 생 줄리앙 성당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100여 점 이상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설치했다. 2010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았고, 2016년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가톨릭 프랑스 회원으로 선정됐다.




    울타리 넘는 예술 꿈꿔

    세계적 스테인드 글라스 거장인 김 신부를 지난달 27일 그의 전시회 'Light for Life'가 열리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만났다. 이곳에서는 12월 21일까지 김 신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평면회화, 유리공예 작품 등 6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 첫날부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김 신부는 "신자뿐 아니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나의 작품의 목표는 모든 울타리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각자 자유로운 감상과 사유를 얻기를 바라기에 늘 그렇듯 작품 제목은 '무제'를 고수했다.




    김 신부는 프랑스 도미니크수도회 소속 사제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가 한국에서 전시를 하는 건 3년 만이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는 '빛으로 그리는 시' 전시회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소감을 묻자 백발의 사제에게서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보여줄 작품이 많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가 새로운 이정표가 될 거예요. 앞으로 할 일이 많아요. 프랑스에 돌아가면 프랑스 왕들이 잠들어 있는 드뢰 왕립 예배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는 전시회장의 조명이 만들어낸, 자신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뒤 그림자를 가리키며 "저런 것들이 내게 또다시 영감을 준다"며 웃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

    김 신부는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성신고(사제를 양성하는 소신학교로 현재는 폐교) 미술교사로 일하다 가톨릭 신앙을 접했다. 유학을 떠난 스위스에서 사제의 길로 접어들었다.


    화가이자 신부인 그에게 사람들은 '예술가의 자아와 종교인으로서의 소명이 충돌할 때는 없는지' 자주 묻는다. 김 신부는 "종교와 예술이야말로 밀착된 관계"라며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강조했듯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다. "처음 수도회에 들어갔을 때 '신부 되려면 그림을 포기하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사려 깊은 신부님께서 '예술과 종교는 맞닿아 있다'며 미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종교 간 장벽도 예술을 통해 뛰어넘으려 한다. 김 신부는 2023년 원경 스님과 함께 시화집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을 펴냈다. 그는 "아름다움 안에서 갈등을 초월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동양인이라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어려서 서예를 배운 김 신부에게 뿌리와 전통은 평생의 화두다. 로만칼라를 갖춰 입은 그의 입에서 미륵의 미소 얘기가 나왔다.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요. 고향인 충남 부여의 백마강, 은진미륵(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그 수평과 수직의 미(美)를 잘 조화시켜 세계 끝까지 가고 싶은 거죠. 아름다운 건 시간과 공간, 모든 걸 초월하거든요."

    "고통 뒤에 올 희망 기억하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초창기인 1981년 회화 작품부터 작년에 작업한 스테인드 글라스까지 40여 년을 망라한다.



    난청 등으로 몸이 다소 불편한 김 신부지만 작품 뒷이야기를 할 때면 유난히 눈이 빛났다. 그는 초창기 회화 작품을 가리키며 "저 작품의 비밀은 물감 살 돈이 없어 종이로 작업을 했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지문'도 남아 있다. 수도원 시멘트 바닥에 캔버스를 펼친 채 물감을 나이프로 긁어내다 보니 프로타주처럼 거친 바닥 무늬가 그대로 새겨진 것. "어쩌다 긁혀낸 자리가 매끈한 작품은 '아 이때는 잠시 다른 곳에 머물며 작업을 했구나' 알아보죠.(웃음)"



    이번 전시에 보랏빛과 붉은 빛 작품을 전면에 배치한 건 갈등의 시대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김 신부는 "보라색은 참회의 빛이고, 피의 상징인 붉은색은 생명의 빛"이라고 설명했다. 가톨릭에서 보라색은 정화와 회개, 속죄를 상징한다. 매년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 시기 미사때 사제들은 보라색 제의를 입는다.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한 뒤에야 부활절의 기쁨을 누린다.

    김 신부는 1940년생으로 가난과 해방, 전쟁을 겪었다. 그는 "악마는 곧 절망"이라며 "790도씨를 견디고 태어난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보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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