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제재에도 성장세를 보이던 러시아 경제가 올해 들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전쟁 특수와 재정 지출로 경기를 부양해온 기존 방식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성장률(4.3%)과 비교하면 둔화세가 뚜렷하다. 러시아 재무부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1.5%로 크게 낮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날 뉴욕 유엔 본부에서 “푸틴과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며 “러시아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후 지속된 서방의 제재에도 지난 2년간 4%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도 높은 성장세였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내수 소비 촉진과 군수 조달, 국방 관련 투자 증가 등이 전쟁 기간 러시아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고금리로 투자가 위축되며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중앙은행은 치솟은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역대 최고 수준인 연 21%로 울렸다. 지난 6월부터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1%포인트씩 인하했지만 연 17%로 여전히 높다. 시장 기대보다 인하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러시아가 이달 기준금리를 2%포인트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기대 물가 상승률이 높아 인하 폭이 제한된 것으로 풀이된다.
CSIS는 러시아의 최근 경제 상황을 “바람직하지 않은 성장”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러시아가 소련 해체 이후 가장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고 봤다. 전쟁 동원에 따른 노동 인구 감소로 생산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부터 대규모 해외 이주가 발생해 외국인 노동자도 러시아 고용 시장에서 이탈했다. 러시아 노동부는 2030년까지 노동 인구가 240만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재정을 뒷받침하는 석유·가스 수입도 감소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달 러시아의 국영 석유 및 가스 판매량은 5920억루블로 지난해 동기보다 23%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유가 하락과 루블화 강세 등이 영향을 미쳤다. 올해 누계 기준으로는 판매량이 20.5% 줄었다. 석유 및 가스 수익은 러시아 전체 정부 수입 중 4분의 1을 차지한다.
반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아직 경기 침체와 거리가 멀다”며 ‘경제 위기설’을 일축했다. 거시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경제 성장 속도를 일부러 늦췄다고 강조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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