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시·산재…규제法 활황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22대 국회의 발의량 상위 법안에는 정보통신망법(9위·112건), 자본시장법(12위·77건), 상법(13위·75건)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17위·69건)과 산업안전보건법(18위·66건)의 순위도 높았다. 대부분 21대 국회에선 상위 20위 안에 들지 않은 법이다. 통상 발의량 상위권은 조세특례제한법(1위·538건), 지방세특례제한법(2위·202건) 등 세제법과 국회 운영 및 선거 관련법이 자리를 채운다.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지난달부터 21건 발의되며 급증했다. SK텔레콤, KT, 롯데카드 등 굵직한 대기업의 해킹 사태가 터져 나오자 주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를 강화하거나 해킹 신고·조사 규정을 손보는 등의 입법이 줄을 이었다.
자본시장 관련법은 자사주 제도 개선을 포함해 특별배임죄 폐지, 사모펀드 규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 기본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복 발의됐다. 담당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이 나서 자본시장 제도 개선을 띄우면서 상임위와 상관없이 의원들 관심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정부가 엄단을 공언한 산업재해 관련법은 22대 국회 발의량의 60.6%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 황명선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까지 징벌적 손해배상·대표이사 책임제 관련 대표 발의에 나섰다.
발의는 크게 늘어난 반면 본회의 통과 비율인 반영률은 15.4%(1978건)로 역대 최저치를 달렸다. 조문이 조금이라도 활용되기는커녕 대부분 방치된 것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슈 법안은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발의를 돕는 국회사무처 법제실의 검토도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많다”며 “발의량 증가에 따라 법안심사소위원회의 검토 자료가 남발되는 것도 사회적 비용 소모”라고 말했다.
◇ 法, 지지층 호소용 전락
질보다 양이 우선된 이 같은 현상은 의원 평가 체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통상 정당의 공천 과정에선 법안 반영률뿐만 아니라 발의 수, 당론 채택 여부 등을 함께 평가한다. 여당 관계자는 “예전엔 초선 의원이 발의를 주도했다면 요즘엔 선수와 무관하게 존재감을 보이려 하는 분위기”라며 “특히 당론이 될 것 같으면 ‘사이버 래커’처럼 갑자기 법안을 고쳐 내며 숟가락을 얹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대통령 임기 초기의 특성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새 정부 국정 과제와 관련돼 있으면 법안을 일단 발의하고 보자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했다.
지지층 마음을 얻으려는 ‘정쟁 법안’ 역시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발의량 상위 법안에는 형법(8위·119건), 형사소송법(9위·112건) 개정안이 10위권에 새롭게 올랐다. 형법·형사소송법에선 내란·외환죄 강화, 피의자 강제구인법, 판검사 징계법 등이 발의량을 끌어올렸다. 계엄법(19위·65건) 역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안이 통과보다는 발의 후 SNS 홍보 등으로 지지층에 소구하는 수단이 됐다”며 “여야의 양극화 교착 국면을 풀고 상임위 중심의 입법 전문성을 강화해 입법 내실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최해련 기자 s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