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된 할리우드 영화 '결혼 피로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영화의 연출을 맡은 앤드류 안 감독, 배우 한기찬, 그리고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주목을 받은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배우의 태도였다.
윤여정은 '결혼 피로연'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저는 전형적인 질문을 하면 전형적인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모나 보이고 그럴 거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는 제 일을 일로 하는 사람이다. 제 일을 했으면 내 미션은 끝낸 거지, '이 영화를 이렇게 봐주십쇼'까지는 내 파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또 "저는 연기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여러분이 보는 분에 있어서 즐겁게 보는 분이 있을 수 있고. 영화는 남의 인생 얘기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실 일이지 '이 영화는 이렇습니다. 이걸 사 주십시오'하는 세일즈맨 역할을 못 하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했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온라인에서는 곧바로 논란이 일었다. 한 네티즌은 "작품에서 연기에 최선을 다했으면 '당연히' 내가 관객이 어떻게 이 작품을 봐주기를 바라면서 연기한 거 아닌가? 그래 놓고 '난 연기 다 끝냈으니까 홍보는 안 할 거고 뭐 어떻게 보던 맘대로 해' 이게 진짜 모순적"이라고 비판했다.
또 "배우라는 직업으로의 프라이드를 깎아 먹는 발언이라 생각한다"고 했고, "'우리 영화 잘 봐주세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세일즈맨 운운하는 걸 어떻게 겸손으로 봐야 하냐"는 반응도 있었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위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 앞에서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반면 옹호하는 시각도 있었다. "내 영화 보라 마라가 아니라, 어떻게 봐야 하냐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뜻"이라는 해석이다. 아울러 "배우로서 할 일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관객의 몫이라는 의미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었고 "표현이 직설적일 뿐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의 해석일 뿐, 대다수 여론은 '책임감 없는 태도'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사실 이날 윤여정에 대한 논란은 기자회견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피로연' 무대인사에도 그는 약속된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타났다. 수백 명의 관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대에 오른 윤여정의 입에서는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다.
진행자가 "교통체증 때문에 늦었다"고 대신 양해를 구했지만, 배우 본인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관객들은 "경황이 없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기다린 이들 앞에 최소한의 사과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윤여정만이 아니었다. 영화 '윗집 사람들'의 배우 겸 감독 하정우, 배우 공효진, 김동욱도 똑같이 15분 지각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무대에 오르자마자 사과 없이 작품 이야기에만 몰두했다. 결국 행사는 예정된 시간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기다린 관객들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부산에서 일부 배우들의 태도는 '배우병'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논란이 확산하자 2021년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당시 논란이 재조명됐다. 방송인 유재석이 대상을 받았을 때, 상당수 영화계 인사들은 형식적인 박수만 보냈다. 그 장면은 유튜브에서 '배우들 손에 다들 마비가 왔냐'는 제목의 영상으로 재조명되며 조롱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반면 영화감독 이준익이 무대에 오를 때는 모든 영화인이 기립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영화인들끼리만 고귀한 척한다", "타 분야 예술인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관객을 위한 예술'을 말하면서 정작 타인과의 존중과 겸손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이 처음으로 만나 작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다. 부산을 찾아온 관객들은 작품과 배우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차표를 예매하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야 상영관에 들어선다. 배우라면 이 자리에서 관객을 향해 존중과 성의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는 단순히 '세일즈'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을 진심을 담아 선보이는 과정의 일부다. 인사와 사과, 감사의 표현이 곧 배우의 책임이자 본분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을 '세일즈'라는 말로 단순화할 때, 자칫 관객들이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배우다. 그러나 영화인에 대한 존경은 수상 경력 하나만으로 오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업무는 여기까지'라는 태도는 관객과의 거리를 넓혔다.
한국 영화계는 늘 위기를 언급하며 "관객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네티즌들은 "맨날 도와달라고 하면서 이런 태도가 지속되는데, 이러면 도와줄 마음도 싹 달아난다"라고 지적했다. 윤여정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발언과 태도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영화인들이 관객 앞에서 보여야 할 태도와 자세를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다. 관객이 없는 영화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