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과생이 주로 응시한 사법시험 출신 검사들에게 기술 유출 사건은 ‘기피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기업 간 기술 확보 전쟁이 격화하고, 관련 피해가 잇따르면서 검찰도 변화를 꾀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첨단기술 보유 기업이 밀집한 수원지방검찰청을 2017년 ‘첨단산업보호 중점청’으로 지정해 전문 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와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등을 거치며 전문성을 쌓은 검사들이 배출되면서 검찰 내 전문가 계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사와 기소, 공소 유지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피해 기업의 실효적 구제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 전문 검사 애써 키워놨는데…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그간 기술 유출 범죄의 가장 큰 희생자는 첨단기술 분야 기업이었다. 한 예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에지 패널 기술을 중국의 경쟁 기업에 팔아넘긴 협력 업체 T사 임직원들이 2018년 기소돼 실형이 확정되기까지 약 5년이 걸렸다. ‘경제 간첩’ 행위로 이미 치명적인 손실을 봤는데, 피해를 구제받는 데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기업들의 원성에 검찰의 칼날도 점차 날카로워졌다. 중점청에서 전문성을 쌓은 검사들이 배출되면서 검찰 내에서도 수사 역량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검찰 내 1세대 기술 유출 전문 검사로는 이춘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사법연수원 33기)이 꼽힌다. 2023년 7월 실형이 확정된 T사 기술유출 사건에서 수사부터 공소 유지까지 전반을 주도했다. 수원지검이 첨단산업보호 중점청으로 지정되면서 수사 역량을 쏟을 수 있게 된 결과였다.
이 기획관을 시작으로 ‘수원지검 방산부-대검 과학수사부-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 중 2개 이상 부서를 거친 전문 검사들이 속속 배출됐다. 안동건 대검 반부패1과장(35기)과 박경택 중앙지검 공판5부장(36기)이 그 대를 잇고 있다.
평검사 중에는 중앙지검 정기부 소속인 김대철 검사(변호사시험 1회)와 박성현 검사(변시 3회), 이재표 대검 부대변인(변시 1회) 등이 꼽힌다. 박 검사와 이 부대변인은 모두 공대 출신인 데다 변리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로스쿨 제도 도입을 계기로 다양한 인재가 유입된 결과다.
이들 전문 검사는 주요 로펌이 선호하는 ‘황금 카드’이기도 하다. 기술 유출 사건의 수사·공판 경험을 두루 갖춘 검사들인 만큼 로펌이 영입하면 기업 자문과 형사변론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다. 검찰 관계자는 “로펌으로의 이탈도 심각한데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조직 개편까지 겹치면 기술 유출 전문 인력이 완전히 공동화될 수 있다”며 “검찰이 기업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 “수사 경험 없으면 공소 유지 한계”
유죄 입증이 까다로워 무죄율이 20%에 달하는 기술 유출 사건은 전문 노하우를 축적한 검사들이 수사부터 공소 유지까지 책임져야 피해 구제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 범죄 중점청인 서울남부지검과 기술 유출 범죄 중점청인 수원지검은 각각 한국거래소, 특허청 등 유관기관으로부터 10명, 6명의 전문 인력을 파견받아 긴밀한 공조 체제를 구축했다. 검찰에서 중점청, 전담 부서 등의 개념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검찰이 처리한 사건 수(연간·구공판 및 구약식)는 2022년 53건, 2023년 83건, 2024년 91건으로 최근 몇 년 새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도 1~8월에만 70건의 기술 유출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다.하지만 ‘수사-기소 분리’를 큰 줄기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검찰이 발전시켜 온 전문 시스템을 정면으로 뒤흔들고 있다.
실무 검사들은 수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경찰 기록만 받아봐선 재판에서 유죄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선의 한 차장검사는 “기술 유출 사건 수사는 재판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별검사처럼 수사·기소 기능을 모두 갖춘 팀이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정희원 기자 suwu@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