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해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대로 3500억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22일 지적했다.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다시 강조한 것이다. 협상 타결 시기에 대해선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李 “美와 협상 합리성 유지될 것”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자 최대 걸림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측 실무진이 제안한 관세 협상 방안들이 상업적 타당성을 지니지 않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아직 한·미 양국 간 입장 차이가 크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지난 18일 공개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에 동의했으면 탄핵당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이 대통령은 이미 관세 협상을 종결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한국 대비 두 배 이상 많고, 엔화는 기축통화인 데다 미국과 일본은 무제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통화스와프 제안을 수용할지,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협상이 진전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 대통령은 관세 협상을 철회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혈맹 사이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관세 협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해법이 아니며, 양국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집중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지느냐는 물음에 이 대통령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참 더 협상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양국 정상은 다음달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2차 한·미 정상회담을 계획 중인데, 이르면 그 전에 관세 협상 타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 동결이 현실적 대안”
이 대통령은 같은 날 공개된 영국 BBC 인터뷰에서 미국 당국의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에 대해 “충격적”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더 망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으로 한·미 관계가 더 강화될 것으로 믿는다”며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고 덧붙였다.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매년 15~20기 핵무기를 추가 생산하고 있다”며 “핵 생산 동결은 임시적인 비상조치로서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결실 없는 노력을 고집할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중 일부를 달성할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남북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당분간 낙관적이지 않다”고 했고, 미·북 대화도 “구체적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SNS에 올린 글을 통해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 국민 대청소 운동’을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부터 10월 1일까지 10일간은 ‘대한민국 새단장 주간’”이라며 “깨끗하고 쾌적한 국토를 조성하고,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전국 단위 대청소 필요성을 언급하며 예산을 배정해 공공 일자리 사업으로 국토 청소를 상시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