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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웃음과 잔혹 사이에서 칼날이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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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웃음과 잔혹 사이에서 칼날이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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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영화. 베니스 수상 불발로 모두의 아쉬움도 한 몸에 받았던 영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의 수식이다. 과연 이 영화의 온당한 평가는 어느 쪽일까.




    기대든 반신반의든 이 영화를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수가없다>는 한국영화산업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은 작품임과 동시에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평단의 관심과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한국영화의 구원투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의 언론의 관심이 유달리 더 컸던 이유도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이 작품의 성공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오래전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소설 ‘The Ax(도끼)’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제지회사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만수(이병헌)가 예상치 못한 해고를 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실현한 중산층의 꿈(근교의 저택,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 마냥 행복한 부인,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까지)은 마치 존재조차 한 적 없듯 산산조각이 난다. 더불어 삼 개월 동안 무슨 직장이든 찾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모든 면접에서 낙방하고 있다. 그가 재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의 약력이 고졸인 그에 비해 너무 출중한 것이다. 만수는 면접을 빗대어 “다 죽이고 돌아오라”는 아내 미리(손예진)의 말 그대로 경쟁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공유된 바와 같이 <어쩔수가없다>는 자본주의와 기술주의의 비판을 담고 있는 블랙 코미디다. 사실상 <박쥐>, <친절한 금자씨>를 포함 박찬욱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에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에서와 같이 예기치 못한 분위기와 타이밍에서가 아닌 영화의 전반과 전면에 슬랩스틱과 코미디가 배치되어 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이러한 과장 혹은 코미디적 상황극을 예고한다. 예컨대 집 정원에서 바비큐를 굽고 있는 만수 위로 펼쳐진 하늘은 마치 <트루먼 쇼>의 그것이 그러하듯 인공적이고 만화적이다. 하늘색 종이 위에 솜으로 만든 구름을 붙여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 하늘 아래에서 도란도란 고기를 굽고 먹는 한 중산층 가족의 전경은 앞으로 펼쳐질 ‘잔혹 동화’의 암시인 셈이다.


    만수 가족의 만화적인 캐리커처는 그가 경쟁자를 하나씩 처단하는 과정에서 슬랩스틱으로 변태(變態)한다. 특히 그가 첫 번째 경쟁자 구범모(이성민)를 제거하기 위해 범모, 그리고 그의 아내 아라(염혜란)와 보여주는 육탄전은 마치 레슬링 경기를 중계하듯 긴 시퀀스를 통해 그려진다. 만수가 미리의 댄스 파티에서 화가 난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춤을 추는 시퀀스 역시 비슷한 맥락의 슬랩스틱이 중심이 되는 비슷한 상황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48분이다. 그리고 이 짧지 않은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이 이렇듯 과도한 상황극과 코미디에 할애된다. 결론적으로 <어쩔수가없다>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지만 지루한 코미디다. 완성도에 큰 결점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상 크게 웃기지 않는 상황극, 혹은 슬랩스틱을 너무 길게 이어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번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감독의 장기에 있어 함량 조절을 잘 못 한 것으로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전작들이 그러했듯, 서스펜스와 스릴에 집중하되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약간의 코미디를 “뿌리는” 식의 전법을 고수해야 했다.

    동시에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쩔수가없다>는 즐길만한, 혹은 (감독 박찬욱에게) 다시금 감탄할 만한 포인트를 그럼에도 보유한 영화라는 것이다. 가령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유현목 감독 등을 포함한 박찬욱 감독이 예찬하는 거장들의 레퍼런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만수가 직장을 잃고 나서부터 얻게 되는 치통은 <오발탄>에서 철호(김진규)가 생활고와 치통에 시달리는 설정을, 그가 시조(차승원)의 시체를 차 트렁크에 넣어둔 채 예상치 못한 이유로 경찰서로 가게 되는 상황은 히치콕의 <로프>에서 두 친구가 시체를 넣어둔 책장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파티를 하는 대목을 변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기대도 아쉬움도 명백한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관객의 확인이 마땅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박찬욱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절대로 목도할 수 없는 대배우들의 세기의 슬랩스틱 역시 그러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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