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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 찾아가 "가르쳐 주세요"…당돌한 청년의 파리 패션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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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 찾아가 "가르쳐 주세요"…당돌한 청년의 파리 패션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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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계는 정글이다. 파리 밀라노 뉴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서바이벌에 비유된다. 달라야 하고, 앞서가야 하고, 시대를 담지 못하면 뒤처지고 마는 그런 정글. 해외에서 K패션 대표 주자로 명성을 떨치는 한국 브랜드가 있다. 이름은 ‘김해김(KIMH?KIM)’. 2016년 발렌시아가 출신 한국인 디자이너 김인태가 자신의 성을 따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여성복 브랜드다. 김인태에게는 한국인 최연소 파리의상조합 정식 가입,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최초 단독 수상, 단편 영화와 협업한 칸영화제 진출 등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그런 그의 진가는 파리패션위크 때 더 돋보인다. 런웨이에 진주알 수백 개를 흩뿌리고, ‘관종’이라는 주제로 모델들이 링거를 꽂고 걷는 등 파격적인 연출로 파리지앵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해김은 시크함과 낭만주의의 중간 지대에서 10년간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차곡차곡 쌓았다. 지난달 명품 브랜드가 모인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8층에 입성한 김인태 대표를 만났다. 새 컬렉션을 소개하는 그의 눈빛은 소년의 그것처럼 한없이 반짝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앙드레 김을 찾아간 소년

    ▷프랑스 파리에서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한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에 가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내가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어렸을 때 할머니와 인형 옷을 입히며 놀던 순간이 기억났어요. 패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 폴 고티에가 피에르 가르뎅 밑에서 배운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그 길로 무작정 앙드레 김 선생님을 찾아갔죠.”


    ▷친분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정말 무작정이었죠. 나름 차려입고 매장에 찾아가서 ‘선생님 계신가요?’ 하니 안내해주더라고요. 선생님 앞에서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선생님이 ‘미스 김, 얘 뭐야’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바로 쫓겨났죠. 그래도 또 찾아갔어요. 몇 번을 더 가니 ‘선생님이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패션을 배워야 된다. 배우고 그때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상당히 무모했네요.

    “그랬죠. 앙드레 김 선생님 말씀을 듣고 패션스쿨 에스모드에 입학한 후 파리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패션 본고장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앙드레 김 선생님 밑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소망을 접고 2007년 파리로 떠나게 됐죠.”
    발렌시아가에서 김해김 창업까지
    ▷파리에선 어땠습니까.


    “원래 목표는 루이비통 수석디자이너였어요. 그래서 에스모드 파리와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를 거쳐 2009년부터 2년 반 동안 발렌시아가에서 일했습니다. 이후 여러 브랜드에서 7~8년간 일하다 보니 더 이상 제 마음에 드는 브랜드가 없었어요. 본능적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때구나’ 싶었습니다.”

    ▷김해김이란 이름도 그때 지었나요.


    “파리에서 만난 친구가 이름을 물어봤는데, 원래는 ‘주마펠(je m’appelle) 인태’라고 해야 하는 걸 한국식으로 ‘주마펠 김인태’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성은 뭐냐’고 하더라고요. 유럽에서 ‘어떤 가문의 누구’라고 하듯이 저도 ‘김해 김 가문의 김인태’라고 했습니다. 김해 김씨는 장식예술로 유명한 가야에서 시작됐잖아요. 저도 제 컬렉션에 리본, 진주 등 장식적 요소를 많이 넣고요. 가야 장인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아 나도 장식예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외국에선 신비로워하더라고요.”

    ▷파리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되고 싶었어요. 샤넬 등 유명 브랜드가 모인 협회에 들어간다는 건 패션 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에선 ‘넌 수억원을 줘도 못한다’고 했어요.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또 무작정 의상조합을 찾아갔습니다. 관계자가 처음엔 5분만 얘기하자고 했는데, 제 여정과 포부를 얘기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그게 파리 패션쇼에 서는 기회를 얻는 계기가 됐고, 여성복으론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죠.”
    “끝나지 않는 장편소설이 되기를”
    ▷파리 패션업계에서 인정받은 비결이 무엇일까요.

    “실험적인 디자인을 좋아한 것 같아요. 2019년 파리패션위크에서 ‘SNS 시대의 관종’을 주제로 쇼를 진행했는데, 링거를 꽂거나 셀카봉을 든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도록 연출했습니다. 남들은 하지 않는 우리만의 생명력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어릴 때 담도협착증으로 병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고요. 일각에선 ‘질병을 패션의 액세서리로 사용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업계에선 ‘그래서 재밌는 브랜드’ ‘계속 지켜볼 만한 브랜드’로 봐줬던 것 같습니다.”


    ▷컬렉션 중 특히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습니까.

    “제 컬렉션은 네 가지 시리즈로 나뉘어있어요. 첫 번째는 ‘살 테면 사보라’는 생각으로 만든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바이 잇 이프 유 캔’, 두 번째는 오늘 저녁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파티복 라인의 ‘투나잇’, 세 번째는 일상에서 매일 입을 수 있는 ‘마이 유니폼’, 마지막은 한국 전통 공예와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김인태 김해김’입니다. 이들 컬렉션 뒤에는 얇은 진주 실이 있는데, 그 실이 끊어지면 행운이 온다는 뜻이에요. 우리 작업실에서도 실이 끊어지면 모두가 박수를 쳐줍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김해김만의 재치랄까요.”

    ▷‘한국형 럭셔리’의 길을 보여줬다고도 합니다.

    “에르메스,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가 유럽에 몰려있는 건 그들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고, 그걸 잘 보존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전쟁으로 그 유산이 잠시 끊겼죠. 하지만 이제는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잖아요. 한국인이 스스로의 문화를 사랑할 수 있는 단계를 이르렀을 때 예술이 꽃을 피운다고 믿어요. 고가의 김해김 옷을 사고,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 때도 저희 브랜드를 입는 것을 보면서 이제 한국형 명품 브랜드도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해김의 대표 그리고 김인태라는 사람으로서 목표가 있나요.

    “김해김은 한국 장식예술이 한 단계 올라가는 데 기여하는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많은 아티스트가 장식예술이란 테두리 안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둥지를 만들고 싶어요. 제 개인적인 목표도 같은 선상에 있어요. 영화, 미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끝나지 않는 장편소설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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