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제로(net-zero)’의 길은 멀고도 힘들다. 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생존 위협을 겪게 될 미래세대를 위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배출량 40% 감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넷제로 약속을 세계에서 14번째로 법제화했다. 넷제로를 이루려면 그간 우리 산업과 경제가 걸어온 길에서 방향을 크게 틀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멀고도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넷제로로 가는 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재생에너지 전환이다. 우리나라도 민간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이제 새 정부는 2030년을 목전에 두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 정부에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규제 개선과 지원 정책 필요
첫째, 재생에너지 보급과 확산을 위한 규제 개선과 지원 정책 실시다. 각 지자체가 조례로 규정하는 이격거리 제한은 재생에너지의 핵심인 태양광의 보급을 막는 대표적 규제다. 이격거리 제한은 도로나 주택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거리에만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도록 제한하는 규제를 의미한다. 이격거리 제한은 지자체별로 기준이 상이한 데다 해외 기준과 차이도 매우 크다. 우리나라 이격거리 제한 평균은 약 300m이며, 최대 1km인 지역도 있다. 300m라는 제한 기준은 미국, 캐나다 등 일부 지역의 기준인 3~20m와 비교하면 수십 배 이상 엄격하다. 유럽 국가는 대부분 이격거리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규제의 합리적 근거도 부족하다. 태양광 모듈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설비가 아닐뿐더러 소음이나 빛 반사 등 일상적 불편함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태양광 모듈의 여러 환경적 영향이 일반 가전제품과 유사하거나 더 낮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에서 밝혀졌다. 합리적 이격거리 제한은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무분별하고 원칙이나 일관성도 부족한 이격거리 제한은 바꾸어야 한다. 농촌 주민과 합리적 보상 또는 주민 참여, 이익 공유 등의 형태로 사업자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도움 되는 상생 모델의 도입 전제 아래 이격거리 제한 기준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인프라 지원 차원에서 송배전을 위한 전력망 확충도 시급하다. 다만 중요도를 고려해 장기적 플랜을 갖고 실행해야 하며, 재원 확충도 한국전력공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 예산 반영 또는 국민펀드 시행 등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송배전망 확충, 변전소 신설 등도 지역 주민과의 상생이 가능한 접근이 중요하다. 아울러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접근 또한 시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국내 제조업 생태계 연계해야
둘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국내 제조업 생태계 유지와 하나의 패키지로 실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신규 태양광발전소에 설치되는 셀과 모듈이 국내산에서 헐값의 외국산 위주로 급격히 바뀌며 국내 제조회사가 줄지어 폐업하고 있다. 이는 국내 일자리를 줄이고 기업 세수도 감소시키는 악순환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제조업의 붕괴는 에너지 안보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해외 특정 국가의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우리 에너지는 또다시 해외 국가, 해외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시대에도 이를 반복할 수는 없다. 재생에너지 원료인 태양과 바람은 우리 땅에서 나온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켜야 한다.
이미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는 자국의 재생에너지 제조업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자국 내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지원하는 투자 세액공제와 생산 세액공제는 물론, 태양광 셀과 모듈 제조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첨단 제조 세액공제 등을 시행해 공급망을 구축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산업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같은 지원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실행돼야 한다.
셋째, 차세대 기술 R&D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세계 태양광업계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이라는 게임체인저의 상용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가 향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쥐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집중 지원을 통한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
차세대 태양전지는 새 정부의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정책의 유기적 실행을 위해서라도 차세대 태양전지의 핵심인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개발이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어 R&D 지원, 투자 지원, 실증 지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성공적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무부처는 재생에너지의 신속한 전환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인허가 권과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타 부처와 지자체의 소극적 행정이 산업 현장에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지난 9월 정부조직 개편안의 기후에너지환경부 발족은 의미가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거시적 시각에서 환경과 에너지 전환, 그리고 산업계 역할과 에너지 안보까지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가야 하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불편하고 당장의 비용도 든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보다 불편하고 비용도 들지만, 미래를 위해 우리가 참고 바꿔야 한다. 국민 모두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전환에 동참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재열 한화큐셀 한국사업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