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탈(脫)중국’이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 자급자족’이란 중국 정부 방침에 따라 현지 기업이 석유화학, 철강 등 주요 제품 생산량을 대폭 늘려 한국 기업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현지 ‘애국소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기업의 탈중국 범위와 강도가 더 크고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중국 진출 20년 만에 스판덱스 생산공장인 태광화섬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조만간 철수하기로 했다. 태광산업은 연말까지 현지 직원 500여 명의 고용 계약을 해지하고, 차입금 상환 등 청산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최근 3년간 누적된 935억원의 영업손실과 55%로 주저앉은 가동률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
한때 태광화섬은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안겨주는 알짜 회사였다. 태광산업은 이곳에서 연 3만2000t의 스판덱스를 생산했고, 2021년에는 스판덱스 브랜드 ‘엘라핏’을 출시하는 등 관련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스판덱스 수요가 주춤해진 데다 중국 업체들이 증설에 나서자 적자기업으로 추락했고, 결국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금호석유화학은 중국 기업과 합작해 2009년 설립한 르자오금호금마화학유한공사 지분 50%를 지난해 전량 매각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 합작사를 통해 종이 코팅용 접착제 등에 쓰이는 스티렌부타디엔(SB) 라텍스를 연 15만t 규모로 생산했다. 이곳 또한 중국 현지 기업들의 증설에 발목이 잡혔다. 중국 내 환경 규제가 까다로워진 것도 한몫했다. 롯데케미칼도 중국 기업과 합작한 롯데삼강케미칼, 롯데케미칼자싱 지분을 2023년 전량 처분했다.
중국 기업들의 증설에 몸살을 앓는 것은 석유화학업계만이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최근 중국 내 유일한 현지 제철소인 장자강포항불수강(PZSS)을 중국 칭산그룹에 약 4000억원에 팔기로 했다. 철강이 중국 기업의 잇따른 증설로 수익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떨어져서다. LG디스플레이도 같은 이유로 액정표시장치(LCD)를 생산하는 중국 광저우 공장을 중국 TCL그룹 산하 차이나스타(CSOT)에 매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으로 승부해야 하는 범용 제품에선 중국 기업을 당해낼 방법이 없다”며 “중국 진출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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