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부터 세탁기 리뷰할 때마다 무조건 달리는 댓글들이 있는데 바로 '드럼은 통돌이 세척력 못 따라감', '세척력은 통돌이가 짱임'이라는 통돌이 찬양론이다. 수백개의 댓글들이 지속적으로 달리는데 댓글만 봤을 땐 거의 드럼 세척력은 쓰레기고 통돌이 세척력은 신격화된 모습이었다."
약 105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가전제품 전문 리뷰 크리에이터 '귀곰'이 최근 전자동세탁기, LG전자 브랜드명으로 더 알려진 '통돌이' 세탁기와 드럼 세탁기 간 세척력을 비교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이 같이 문을 열었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사흘 만인 15일 오후 현재 조회수 22만회를 넘어설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통돌이 찬양론' 배경 봤더니 13년 전 논문?
귀곰은 통돌이가 드럼보다 세척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의 배경을 먼저 짚었다. 통돌이, 전자동세탁기는 물을 세탁조에 가득 채운 다음 와류 형태의 회전력으로 빨래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물리적으로 옷감끼리 서로 부딪히는 만큼 세척력이 더 좋다는 논리다. 반대로 드럼은 옷감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낙차 방식으로 세척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귀곰은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확실한 증거 같은 걸 본 적이 없어서 구전으로 전승된 도시전설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귀곰이 찾은 '통돌이 찬양론'의 근거는 바로 2012년 한양대 의류학과에서 발표된 석사학위 논문. 이 논문이 통돌이 찬양론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다만 논문 '세탁기, 세제 및 오구 종류에 따른 세탁성'(박서경)을 보면 통돌이 찬양론의 근거 자료로는 다소 어색한 대목이 있다. 세척력 자체는 드럼식이 현저하게 우수하지만 세탁 결과를 좌우하는 헹굼성의 경우 통돌이가 비교적 우세하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찬양론'의 수준으론 볼 수 없는 정도다.
저자는 "세탁하면서 세제를 사용해 오구를 섬유로부터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탁물에 남아있는 더러운 세액과 세탁물이 흡착하고 있는 오구와 세제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헹구기 과정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며 "세탁성의 경우 드럼식 세탁기가 와류식 세탁기보다 거의 모든 세제와 오염포에서 세탁성이 현저하게 우수했고 헹굼성의 경우 반대로 와류식 세탁기가 드럼식 세탁기보다 약간 우수하다"고 분석했다.

오염포 실험 결과 드럼 세척력이 2배 더 우위
귀곰은 이 논문이 이미 13년 전에 나온 연구 결과인 데다 "이때는 터보워시나 6모션 등도 없을 시기"였다면서 직접 비교 실험을 진행했다. 드럼이 초창기와 달리 세탁조 내부 직경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세탁 성능을 한층 끌어올린 점을 고려하면 통돌이보다 나을 것이란 예상이다. 귀곰은 "기술적 발전은 통돌이보다 더 많이 팔리는 드럼에 집중돼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그는 실험을 위해 LG전자 25㎏ 용량의 통돌이 세탁기와 같은 용량의 동일 브랜드 드럼 세탁기를 함께 구매했다. 세제도 퍼실 브랜드 제품으로 동일한 용량을 사용했다. 실험 대상은 국제표준 오염포로 각각 2장. 귀곰은 오염포를 세탁한 다음 평균을 산출해 세척력을 비교했다. 세탁코스는 세부 항목도 최대한 동일하게 맞췄다.
귀곰은 오염포를 꺼내 0.1단위 색 변화를 체크할 수 있는 색차계를 사용해 얼마나 하얗게 세탁됐는지 확인했다. 그는 "정말 예상 밖의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며 "결과부터 말하자면 드럼히 통돌이를 X발랐다"고 했다. 피, 잉크 개선율은 통돌이 세탁기가 47.1%, 드럼 세탁기가 97.8%로 나타났다. 흙먼지 개선율은 통돌이와 드럼이 각각 8.1%, 18.4%를 기록했다. 숫자가 높을수록 흰색과 더 가깝게 세탁됐다는 의미다. 드럼이 2배 이상의 세척력을 보인 셈이다.
티셔츠 묻은 커피 자국 세척도 드럼 세탁기 '승'
귀곰은 실제 티셔츠에 포도주스와 커피를 같은 양을 뿌려 새 오염포와 함께 한 번 더 세탁을 진행했다. 물리력에 의한 세척력을 강조하는 '통돌이 찬양론'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염포의 경우 통돌이는 7~28% 개선율을, 드럼은 10~67% 개선율을 나타냈다.물리력으로 세척력이 증가한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도 도출됐다. 귀곰은 "빨랫감이 더 많이 들어가니 물리력으로 세척력이 더 증가할 것이란 예상과는 다르게 드럼이든, 통돌이든 오염포만 들어갔을 때보다 세척력 수치는 (티셔츠를 함께 넣었을 때) 오히려 더 줄었다"며 "물리력보다 세제에 닿는 환경이 세척력에 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나란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 티셔츠의 경우 포도주스 얼룩은 통돌이가 색차계 수치 기준으로 87.5, 드럼이 88.7을 기록했다. 커피 얼룩은 각각 90.2, 90.3을 나타냈다.
귀곰은 "세탁물 없어도 드럼 세척력 우위, 세탁물 넣어도 드럼 세척력 우위"라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상 LG가 워낙 세탁기 세척력이 타 브랜드 대비 좋고 이번에 실험한 워시타워 신형의 세척력이 테스트 결과가 정말 좋은 편이라 타 브랜드 드럼도 통돌이를 압살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3년 전 논문에서도 통돌이 대비 드럼식이 압도적으로 세척력이 좋았던 걸 보면 드럼 세탁기란 장르가 통돌이 장르보다 세척력이 더 좋다란 결론은 맞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돌이는 중간에 빨래도 더 넣기 좋고 이불빨래하기도 더 낫고 폭이 좁아 드럼을 설치할 수 없는 곳에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 인정한다"며 "그런데 드럼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인데도 세척력 믿음 때문에 통돌이를 설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돌이 대 드럼 세척력 논쟁은 한 현직 가전제품 수리업체 대표가 최근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를 통해 전자동세탁기 성능이 우수하다고 설명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지식인사이드는 이 영상 썸네일에 '상위 1% 부자 동네에 통돌이만 팔리는 이유'란 제목을 걸어 통돌이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해당 영상은 지난 1일 공개된 이후 이날 기준 조회수 140만회를 넘어섰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