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12일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 대해 “이전과 비슷하게 진전이 많지 않다”며 “세부적으로 입장 차이가 커 조율할 게 많다”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한국이 협정을 수용하지 않으면 관세를 내야 한다”며 미국 측의 요구대로 관세협정에 서명하라는 압박에 따라 협상이 공전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위 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위 실장은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저희도 유의하고 있다”며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레토릭(rhetoric·수사)’이라 개의(介意)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협상장에서 어떻게 조율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구체적인 관세 협상은 다른 쪽(정책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위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당시엔 양쪽(관세와 안보 협상)을 잘 끌고 나가며 진력(盡力)했다”며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후, 안보 쪽은 대충 (합의가) 됐고, 남은 건 관세 협상”이라고 설명했다.
위 실장은 “안보 협상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관세 협상은 세부 사항이 걸려있다”면서 “관세 협상은 시작 단계라 세부적으로 더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말 한국과 미국이 상호 및 자동차 품목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대미 투자펀드를 3500억달러 조성하는 데 합의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세부 내용을 정하는 과정이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렀을 뿐이라는 얘기다. 투자 펀드의 주도권, 수익 배분, 투자금 조달 방법 등에 대해 양국이 양보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공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협상이 상당히 교착 상태에 있다”고 말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 앞으로 한참 더 협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밀에 부쳐야 할 협상 과정에 대해 이 대통령과 두 실장이 연달아 강경 발언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