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국민성장펀드’ 규모를 당초 100조원에서 150조원 이상으로 키우기로 한 것은 세계 각국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밀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녹아든 조치로 분석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 자금을 집중 지원해 경기 둔화, 미국발(發) ‘관세 폭탄’, 중국 최첨단 기술기업(레드테크)의 공습, 주력 산업 경쟁력 약화 등 복합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정부와 국책은행에 더해 민간 금융회사, 연기금, 일반 국민까지 모두 투자에 참여한 뒤 이익을 공유할 방침이다. 다만 민간에서 수십조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한국형 엔비디아 키운다
10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성장펀드 조성 및 운용계획’에 따르면 펀드는 산업은행에 설치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75조원)에 더해 금융회사, 연기금, 일반 국민 등 민간 자금(75조원)을 모아 총 150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 재정이 손실을 먼저 부담하는 후순위로 투입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국민성장펀드 관련 항목으로 1조원을 편성했다.국민성장펀드는 이 대통령의 정책 비전인 ‘3·3·5’(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 도약) 실현을 위한 핵심 공약이다. 지난달 활동을 마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국민성장펀드 규모를 100조원에서 150조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했고, 담당 부처인 금융위가 최종 규모를 확정했다.
펀드는 AI, 바이오, 반도체, 2차전지, 미래차,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위산업 등 첨단전략산업과 관련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산업별 지원 규모는 AI가 30조원으로 가장 많다. 반도체(20조9000억원), 모빌리티(15조4000억원), 바이오·백신(11조6000억원), 2차전지(7조9000억원) 등에도 대규모 자금을 공급한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국민보고대회에서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고속도로, 반도체·바이오·조선·콘텐츠 등 산업 파급 효과가 크고 경제 성장 전환점이 될 메가프로젝트에 중점 지원할 계획”이라며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 펀드 지속 가능성은 ‘과제’
국민성장펀드는 직접 지분투자, 간접 투자, 인프라 투·융자, 연 2%대 초저리 대출 등 기업 상황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신설 법인이나 공장을 설립할 때 국민성장펀드가 지분투자자로 참여하거나 인수합병(M&A) 자금을 지원하는 식이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의 한 축으로 기술기업 관련 초장기 기술투자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또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는 국민참여형 펀드를 약 5조원 규모로 만들 계획이다.펀드 출시 시기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펀드의 핵심 재원인 첨단전략산업기금이 오는 12월 초 출범해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금융회사가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달라”고 한 발언과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당국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펀드에 투자할 때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건전성 및 운용 규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국민성장펀드가 새 정부 초반에 ‘반짝’ 주목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민간 참여를 유도할 만한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는 “궁극적으로는 펀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운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펀드 자금 상당 부분이 초저리 대출로 운용되면 매력적인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