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이란 예술 장르에서 오랜 기간 최적의 소통방식으로 굳어진 쇼가 아닌 전시라니, 왜?” 그러나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보니 의문이 풀렸다. 그녀의 작품은 패션쇼의 특징인 풀샷 대신, 전시처럼 클로즈업해서 자세히 보아야 하는 명확한 특성이 있었다. 하나같이 디테일 강한 옷들은 쇼의 스포트라이트 대신 직접 가까이서 눈으로 봐야 더 울림을 주는 작품인 까닭이다.
이번에 그녀가 내세운 주제는 “Quiet Strength, Living Heritage”. 여성의 내적인 강인함이 투영된 옷에 우리의 살아있는 문화유산 디테일을 더했다. 디자인 테마는 한옥 지붕에 쓰이는 기와. 기와는 유려한 곡선이 겹겹이 이어지는 흐름이 특징. 치마, 상의, 원피스 등 모든 작품에 흐르듯 이어지는 기와 모티브를 녹였다. 특히 목 부분 옷깃을 기와 모양에서 변주한 디자인이 핵심으로, 모시 등 우리 전통 원단에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작업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부터 남다른 그녀. 작품은 더욱 스마트하다. 일단 왜 이런 작품을 만드는지에 대한 메타인지가 분명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패션 예술가로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세계적 패션 명문대인 영국 세인트 마틴에서 여성복으로 학사를,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LCF)에서 패션 액세서리로 석사를 취득하며 패션 전반에 관해서 학문적 기반도 단단히 세웠다. 박소영의 부친은 서울패션위크 태동 때부터 줄곧 참여한 유명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 부친 덕분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친의 창고에 어마어마하게 쌓인 옷감과 부자재는 그녀 작품의 원천. 유년 시절 추억이 담긴 재료로 만든 옷에는 옷감에 담긴 기존의 서사와 그녀만의 새로운 서사가 중첩된다.

“어릴 적부터 쇼가 끝나면, 사장되는 옷과 남은 재료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쇼에 오른 한 벌의 옷은 디자인을 위한 분투, 한땀 한땀 손바느질 등 수많은 이들의 고뇌와 노력의 집합체죠. 온 마음을 다한 창조물에 담긴 기억과 서사를 되살리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기억으로 연결되는 존재니까요.”
-패션디자이너 박소영
그녀의 예술 철학은 일본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 대표 디자이너인 미나가와 아키라와 일맥상통한다. 미나가와 아키라 역시 “옷은 희로애락을 담는 기억의 저장장치”라는 신념을 옷에 투영하는 예술가.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는 “그날그날의 추억이 담기므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미나가와의 예술관은 박소영의 세계에서는 더욱 의미가 증폭된다.
그녀는 ‘윗세대 옷으로 다시 만든 옷에는 이중의 기억과 서사가 담겨있기에 입는 유산’이라고 정의한다. 선대의 옷과 옷감을 활용해 만든 패션에 자기만의 철학을 담는 예술 작업이 여타의 디자이너와 차별화되는 지점.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그녀는 다른 여성 예술가(에스텔 차, 박지향)들과 연대해 함께 한 전시도 선보였다. 3명의 여성 예술가는 순환(cycle)을 주제로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회화, 패션, 설치 예술이 망라된 전시로 서울패션위크의 예술적 다양성에 일조했다.

‘기와’로 상징되는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모티브를 얻고, ‘창고 옷’이란 개인의 유산으로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낸 박소영.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그녀는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기억에서 창의적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면서 자신의 패션이 왜 예술인지를 훌륭히 입증했다.
최효안 예술칼럼니스트/디아젠다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