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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가 깊어지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K-메인넷’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논의의 진전은 반가운 일이지만, 현실은 안타깝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K-메인넷’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인넷은 ‘메인넷 코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코인 발행 및 판매가 불가능하다. 규제를 우회해 해외 법인을 통해 코인을 발행하더라도 발행 주체는 이를 현금화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메인넷을 만들어 운영할 수 없다. 자세히 알아보자.
사실 메인넷은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메인넷은 ‘테스트넷’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책임질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말하는 것이라면 레이어1(Layer 1, L1) 개념을 쓰는 것이 알맞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메인넷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하겠다.
메인넷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솔라나 등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뜻한다. 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실제 자산이 발행되고 유통된다. 즉, 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상의 기록은 가치를 가진 자산이라는 뜻과도 같다.
블록체인은 보통 수많은 노드(서버)에 기록된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을 뜻한다. 아주 많은 수의 노드들이 합의 알고리즘(consensus algorithm)을 통해 같은 내용을 기록하므로, 블록체인상의 기록은 믿을 수 있고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인이 없는 블록체인이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는 논거가 된다.
노드는 컴퓨터다. 블록체인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노드가 연산력을 제공해야 한다. 노드의 수가 많을수록, 그리고 참여자 간 관계가 없을수록 블록체인의 신뢰도는 더 올라간다. 문제는 노드 참여자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다. 메인넷 코인이 그래서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재로서의 네트워크 운영을 위해 서버(노드)를 제공하면 이 네트워크상에서 전송 수수료 등으로 쓰이는 코인을 발행해 지급하는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이 바로 이것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현재 2만 개 이상의 노드가 참여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메인넷은 지분증명방식(PoS) 또는 이를 일부 변형한 합의 알고리즘으로 운영된다. 쉽게 말하면, 노드 참여자가 메인넷 코인 상당량을 담보로 걸고 해당 노드가 선의의 참여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격을 인정받은 노드가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연산력을 제공해 보상을 얻는다. 해당 노드가 잘못된 기록을 제출하면 담보된 코인은 압수되거나 소각되는 형태로 운영되는 네트워크도 많다. 대표적인 지분증명방식 블록체인인 이더리움에는 1만 개 이상의 노드가 참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메인넷의 탈중앙화 운영에 메인넷 코인은 필수다. 누군가 자비를 들여 비영리로 메인넷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충분한 탈중앙화를 이룰 만큼의 다수의 참여자는 장기간 확보할 수 없다. 코인 없는 메인넷을 만든다는 시도는 그간 여럿 있었으나, 다수의 참여자를 확보해 생태계까지 만든 예는 찾을 수 없다.
메인넷은 단순한 기술 상품이 아니다. 수많은 노드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처럼 메인넷 상에 각종 디앱(dApp, 블록체인상의 애플리케이션)들이 생태계를 이루어야 한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는 원천 차단되어 있다. 메인넷과 디앱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코인의 발행과 현금화가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7년 12월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으로 가상자산 발행 및 판매(ICO)가 전면 금지됐다.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매입·담보 취득·지분투자도 금지됐다. 2018년 2월 국무조정실은 “가상통화 거래 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불투명성은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적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는 말로 ‘블록체인은 육성하지만, 코인은 금지한다’라는 정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삼성과 LG, SK, 롯데 등 많은 대기업이 이 시기에 자체 메인넷을 출시했으나, 고유자산(메인넷 코인)이 없는 형태의 블록체인이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대기업 메인넷은 현실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다.
소위 김치코인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싱가포르나 버진아일랜드 등 코인 발행이 합법인 곳에 법인을 만들어 코인을 발행했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발행 주체는 해외에 두고 국내 법인은 기술용역 형태로 비용을 수취하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국내 법인들은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2021년 특금법 시행 이후 국내 법인들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이 차단돼 있다. 올해 하반기에 법인의 거래소 이용이 허용된다는 발표가 2월에 있었으나, 9월이 지나도 아직 변화는 없다. 코인을 발행하거나 코인을 벌어들여 현금화해서 직원을 채용하고 사무실 월세를 내는 것이 원천 차단되어 있으니, 우리 기업들은 메인넷이나 디앱을 만들 수도, 운영할 수도 없다. 즉, 현행 규제가 메인넷이나 디앱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스테이블코인이 부상하니 이제 K-메인넷은 왜 없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반갑고도 씁쓸하다. 전 세계가 ‘더 나은 이더리움’을 만들겠다고 달려든 2017년 당시 정부의 전면 금지 조치가 없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기업이 만든 세계적 수준의 메인넷, 대한민국 기업이 만든 세계적 수준의 김치코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디앱들이 우리 기업이 만든 메인넷 상에서 생태계를 이루고, 이를 국내 천만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생태계 상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며칠 전 ‘템포’라는 이름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전용 메인넷이 공개됐다. 파트너사 중에는 지급결제 전문업체인 스트라이프, 온라인 쇼핑 솔루션인 쇼피파이, 도이체방크,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등과 함께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1위 업체인 쿠팡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