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가.보건복지부의 ‘2023 노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노인의 87.2%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거동이 어려워지더라도 현재 집에 남고 싶다는 응답도 48.9%에 달했다. 이는 일상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요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교통, 주거, 의료, 사회 참여 등 8개 영역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만든 개념인 ‘고령친화도시’는 바로 이런 삶이 가능한 곳이다. 고령친화도시 가입 도시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2007년부터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 네트워크’를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57개국, 1739개 도시가 여기에 가입했다. 국가별로 평균 35개 도시가 가입한 셈이다.
한국은 평균을 훌쩍 넘는 65개 지방자치단체가 가입을 완료했다. 그렇다면 노인들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일까. 많은 지자체가 고령친화도시 가입에 나선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이미 광역자치단체가 가입했는데도 기초자치단체가 다시 이름을 올리는 식의 중복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 성과를 드러내는 데 더 무게가 실린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은 이미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등 정부 차원의 정책이 마련돼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앞다퉈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가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중앙정부 정책만으로는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WHO가 인증한 고령친화도시’라는 타이틀은 성과를 홍보하기에 훨씬 효과적이다. 정책 내실보다 ‘보여주기’가 앞서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고령친화도시 가입은 어디까지나 선언에 불과할 뿐 법적·정책적 구속력이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가입 여부 자체가 아니라 정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지난해 1월,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고령친화도시 지정의 근거가 새롭게 마련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외연 확장보다 실질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의 몇 가지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먼저 중앙정부와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과 제도적 기반 마련에 힘써야 한다. 광역자치단체는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기초자치단체는 주민 밀착형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면 재원과 행정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고령친화도시는 복지, 보건, 주거, 교통 등 다양한 영역이 얽혀 있는 만큼 기관 간 협업 없이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중·장년, 청년 등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세대 통합 모델도 확대해야 한다. 고령친화도시 조성은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세대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도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 인구 고령화 도전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친화도시는 인증과 홍보에 집착할 게 아니라 진짜 현실이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