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이 오더라도 막을 수 있는 보편적인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만난 브루스 워커 라곤연구소장은 “다음 팬데믹은 인플루엔자(독감)에서 비롯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2009년 설립된 라곤연구소는 MIT와 하버드대, 제너럴브리검병원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다학제 연구기관이다. 보스턴의 바이오클러스터인 켄들스퀘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모더나, 화이자 등에서 발 빠르게 백신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라곤연구소가 지원한 다학제 연구 덕분이다.
워커 소장은 감염병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라곤연구소를 설립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인 HIV(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와 면역세포인 T세포의 관계를 발견한 논문을 세계적 과학 저널인 사이언스에 싣기도 했다.
그는 2020년 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이 막 시작됐을 때부터 관련 백신을 연구했다. 워커 소장은 “당시 중국 우한 출신인 한 학생으로부터 끔찍한 감염병 소식을 접했고, 길리어드사이언스에서 일하는 제자에게서 렘데시비르를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글로벌 팬데믹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백신 개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워커 소장은 이미 다음 팬데믹 대비에 나섰다.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플루엔자다. 그는 “에볼라, 지카,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HIV, 코로나 등을 모두 연구하지만 다음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인플루엔자”라며 “어떤 병원체에 대해서든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HIV에서 발견한 방식을 새로운 백신 연구에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백신은 면역체계에 관한 연구라는 점에서 HIV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워커 소장은 약물 없이 HIV를 통제하는 1500여 명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엘리트 컨트롤러’라고 불리는 이들은 HIV에 감염됐지만 항레트로바이러스약물(ART)을 사용하지 않고도 바이러스의 기능을 막을 수 있다. 워커 소장은 “엘리트 컨트롤러의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고 파괴한다”며 “동시에 T세포가 HIV 구조를 유지하는 중요한 아미노산을 분해해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해 HIV 환자의 면역 체계가 스스로 바이러스를 물리치도록 하는 백신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케임브리지=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