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슬라가 ‘수입차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전기차 시장 1위 등극을 눈앞에 뒀다. 일본 전기차 1위 닛산자동차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할인에다 판매망을 넓힌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8월 테슬라는 일본에서 전기차 980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월 대비 2.1배 늘었다. 선두인 닛산은 48% 급감한 1120대였다. 2023년 1월만 해도 6000대 이상 벌어졌던 격차가 100대 안팎으로 좁혀진 것이다.
닛산은 2010년 12월 전기차 ‘리프’를 출시한 이후, 월간 기준 선두 자리를 15년 가까이 지켰다. 그러나 올해 들어 급격히 하락세다. 리프 8월 판매는 50% 감소한 193대로 정점 대비 10%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이후 업그레이드하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반면 테슬라는 일본에서 호조세가 두드러진다. 올해 1~8월 누적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한 6590대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였던 2022년 연간 판매(5900대)를 이미 경신했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 1만 대 돌파도 시야에 들어왔다.
테슬라가 일본에서 독자적인 전략을 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테슬라는 5월부터 주력 차종인 ‘모델3’ 가격을 낮췄다. 가장 저렴한 후륜 모델(RWD)은 정상 가격보다 45만3000엔 저렴하게 책정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감안하면 399만엔에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시모토 리치 테슬라 일본법인 대표는 “고급차 이미지를 떨쳐내고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중차’라는 점을 알리겠다”며 가격 인하 의도를 설명했다. 테슬라는 고급형 2종의 일본 수출도 종료하고, 보급형인 ‘모델3’와 ‘모델Y’에 집중했다.
매장도 급격히 늘리고 있다. 테슬라는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차량을 판매했고, 판촉도 온라인 중심을 진행했다. 작년까지 일본 내 매장은 14곳에 그쳤다. 그러나 인지도가 낮다는 판단에 따라 매장 위주로 방침을 전환했다.
8월에는 오키나와에 첫 매장을 여는 등 전국으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9월에 여는 곳까지 합치면 25곳에 달한다. 대형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매장을 열어 연내 30곳, 내년에는 5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 전체 전기차 판매는 부진한 상황이다. 8월엔 전년 동월 대비 18% 감소한 3614대였다. 주행 거리에 대한 불안과 충전 인프라 불편으로 판매가 늘지 않는 모습이다. 전기차 비중은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 판매가 늘면서 일본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점유율은 30%에 달하게 됐다.
테슬라는 독자 규격 충전망을 자체 구축하고 있다. 강점은 짧은 충전 시간이다. 150kW 이상 급속 충전기를 늘리고 있다. 6월 기준 충전소는 약 130곳에 그치지만, 충전 불편을 우려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테슬라의 인공지능(AI) 자율주행에도 기대가 커지고 있다. 먼저 미국에서 도입했으며, 8월부터 일본에서 시험 주행을 시작했다. 조기에 구현하면 새로운 소비자 확보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 BYD와 현대자동차도 일본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달 잇따라 100만엔 이상 할인 플랜을 내놨다. 니혼게이자이는 “수입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성장 여지가 큰 일본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일본 업체의 신차 출시가 더 늦어지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