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자본이 사모펀드(PEF)와 역외 거점을 활용해 한국 전략산업에 우회적으로 침투하면서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공급망 핵심 기업 보호와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KED글로벌이 3일 서울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연 ‘차이나머니의 은밀한 침투: 전 세계 경제안보 빈틈을 파고든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중국 자본의 우회 진출은 단순 투자 이슈가 아니라 국가 경제안보 문제”라며 “공급망 핵심 기업 보호와 자본시장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PEF 통한 우회 M&A, 안보 위협 직결”
주제발표에 나선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세계경제분석실장은 “중국 자본은 PEF와 역외 거점을 활용해 전략 자산과 공급망 핵심 거점에 은밀히 침투하고 있다”며 “싱가포르·홍콩·케이맨 등을 거점으로 실제 투자 주체를 숨기기 때문에 자본 흐름과 목적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해외 투자 장려 목록에 ‘첨단기술·선진 제조기업’과 ‘해외 유전·광산 등 에너지 개발’을 포함하고 있다. 단순한 경제적 이익 추구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내 주도권 확보를 노린 장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풍부한 유동성에 더해 지난 6월 적격금융기관(QDII) 프로그램의 한도와 대상을 확대하며 해외 PEF 출자를 늘리는 추세다. 특히 홍콩·케이맨 제도 등 역외 금융 허브를 거쳐 자금을 유출하고, 페이퍼컴퍼니(위장 투자자)를 세워 실질적 소유주를 감추는 방식이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모펀드 시장은 ‘실제소유자 확인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역외 펀드가 국내 계좌를 개설할 때는 ‘외국인투자등록증에 기재된 자산운용사 대표자’만 확인한다”며 “이 같은 구조적 빈틈이 중국 자본이 소유관계를 은폐하고 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된다”고 경고했다.
공급망 핵심기업 방어 필요성
패널 토론에서는 중국 자본의 우회 진출이 공급망 안정성은 물론 국가 전략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강천구 인하대 교수는 “중국의 희토류·핵심광물 수출 통제로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한국은 핵심 자원과 기술을 전략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고려아연이 미국 록히드마틴과 공급망 협력 MOU를 체결한 사례를 들어 “한국 기업의 글로벌 핵심 광물 공급망 내 전략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최근 국내 기업 인수 사례에서 보듯 자본 영향력 확대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라 현실적 위협”이라며 “고려아연처럼 세계 공급망의 전략 거점을 차지한 기업이 경영권 분쟁이나 외국 자본의 우회 진출에 흔들리면, 단순한 경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 핵심기술 유출과 통제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자본시장의 제도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그는 “사모펀드의 불투명성은 중국 자본 차단뿐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 신뢰에도 타격을 준다”며 “미국 CFI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일본 외환법(FEFTA), EU의 FDI(외국인직접투자) 스크리닝처럼 한국도 외국인 투자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윤희 고려대 교수는 에너지 인프라 관점에서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BESS(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 EMS(에너지 관리 시스템) 같은 전력 IT 인프라 사업에 외국 자본이 PEF나 특수목적법인(SPV) 형태로 참여하면 단순 지분 투자를 넘어선다”며 “데이터 접근권, 거부권을 통해 국가 전력망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기업 부채 부담과 금융권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맞물리면 외국 자본 의존 구조가 굳어질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판 CFIUS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중국 자본의 우회 공급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 CFI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나 일본 경제안보추진법처럼 핵심 기술·전략 산업에 대해선 외국인 투자 심사 범위를 확대하고, PEF의 실질적 수익자 규명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선제적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한국은 단기 대응을 넘어 공급망 안정화와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를 아우르는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핵심 산업의 외국 자본 투자는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