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조5000억원에 달하는 2026년 국토교통부 예산안이 발표됐습니다. 올해 예산안보다 7.4%인 4조3000억원이 증액됐고 정부 전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6% 수준입니다.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고 시급한 중점 추진과제에 재원을 재투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예산을 세부적으로 살피면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필요한 주택구입, 전세자금 융자 사업 예산이 급감한다는 점입니다.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 등에 쓰이는 이 예산은 올해 14조571억원에서 내년 10조3015억원으로 26.7% 줄어듭니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불안해질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미집행예산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주택금융은 경기 변동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올해 집행이 저조했다면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것인데, 그렇다고 예산을 급격히 줄이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요가 몰릴 경우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분양주택 융자 예산은 올해 1조4716억원에서 내년 4270억원으로 무려 1조446억원, 71%나 삭감됐습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분양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늘렸던 예산이지만, 70% 이상 줄어들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2년(3162억원) 수준까지 후퇴했습니다.
반대로 임대주택 지원 예산은 크게 늘었습니다. 주택도시기금의 내년 임대주택 융자와 출자액은 각각 14조4584억원, 8조3274억원으로 편성돼 출자액이 무려 182.4%나 늘어납니다. 특히 다가구주택 매입임대를 위한 융자액과 출자액이 올해보다 109.5%, 1964.5%나 증가합니다.
최고의 복지는 내 집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한 예산을 급격하게 줄이고 임대주택에 집중한다면 서민들의 자산 축적은 시작부터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시장에서는 엄연히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자산의 역할을 합니다. 주택을 장기간 보유하면 자연스럽게 자산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공임대주택은 당장 사회초년생이나 취약계층의 주거 부담을 낮춰주지만, 내 집 마련 욕구를 줄어들게 만듭니다. 자산축적의 시작 단계인 자가 주택 마련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과거보다 크게 오른 집값에 내 집 마련 자체를 포기하도록 합니다. 이미 공공과 민간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다 집값 상승에서 소외된 이들은 '벼락거지'가 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습니다.
정부의 임대주택 예산이 다가구주택 매입으로 쏠려있다는 점도 우려를 삽니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 중인 전국 공공임대주택은 98만5300가구입니다. 이 가운데 5.1%에 해당하는 4만9889가구는 6개월 이상 공실이었습니다. 전국 지자체 도시공사에서 관리하는 임대주택까지 합친다면 10만호가량은 공실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20·30세대가 선호하지 않는 다가구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것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물론 공공임대주택이 꼭 필요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자산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임대주택만 권하는 것은 미래 희망을 사라지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정부의 공급정책이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초년생이나 취약계층이 하루빨리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양산한 벼락거지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 최대의 주거복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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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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