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받으려고 며칠째 병원에서 숙식하고 있어요. 전공의들이 조금만 환자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네요.”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옆 보호자 대기실에서 지난 1일 만난 한 환자 보호자의 말이다. 난소암 수술 후 장루(인공 항문)가 막힌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을 찾았지만, 줄지 않는 대기줄에 진료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이날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해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온 첫날이었다. 전공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병원 한쪽에선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며칠째 돗자리와 담요를 바닥에 깔고 대기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체 전공의 복귀율은 59.1%지만 응급의학과 복귀율은 42.1%에 그쳤다.
그 시각,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복귀하자마자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대한전공의노동조합 설립을 선언했다. 전공의노조는 “과로와 탈진의 수련 환경이 전공의 인권을 짓밟고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며 “전공의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1000명 이상의 전공의가 이미 가입했고, 신청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4만 명 의사 모두가 참여하는 전국의사노조 조직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전공의노조 설립을 적극 지지했다.
앞서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7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찾아 “1년5개월 이상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불안해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국민 사과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전공의들이 노조부터 설립하고 나선 것이다. 의료 공백 사태를 일으키고도 별다른 불이익 없이 병원으로 복귀해 ‘특혜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말이다.
여론은 싸늘하다. 전공의 노조 설립을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는 ‘일이 많다면서 의사 수 확대는 왜 반대하느냐’, ‘노조 만들어서 언제든지 환자 내팽개치고 파업하겠다는 것 아니냐’, ‘개선장군이라도 된 줄 아는 것 같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병원 내부에서는 “전공의들이 당직이나 잡무를 거부한다면 결국 교수들이 부담을 다 떠안게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당 근무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수련 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전공의들은 노조 활동에 열을 올리기 전에 먼저 환자들의 신뢰부터 되찾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응급실 한쪽에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