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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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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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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5일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면적으로는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숨겨져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요건을 강화했으며, 전자주주총회 제도 도입과 독립이사 비율 상향 조치가 포함됐다.

    특히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은 법 개정과 동시에 즉시 시행된다. 이 조항은 언뜻 주주 친화적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주주 각각에 대해 이사가 충실 의무를 져야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과 법적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기존에는 이사가 회사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기준으로 경영 판단을 내려야 했지만, 이제는 단기 수익을 선호하는 주주와 장기 성장을 중시하는 주주, 외국계 기관투자가와 내국인 개인투자자, 행동주의 펀드와 장기보유 펀드 등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느 한 편의 이해를 따라도, 나머지 주주로부터 충실 의무 위반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 판단의 위축과 보신주의적 의사결정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하고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같은 시기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역시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원청 기업이 하청 근로자와도 직접 교섭해야 할 책임을 지게 만들고, 파업에 따른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함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이 조치가 경영권 침해는 물론이고, 불법 파업에 대한 대응 수단을 제한함으로써 법적 통제력을 약화시킨다고 우려한다. 특히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영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 법안은 한국 기업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외국인 자본의 이탈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의 ‘공동사용자 법리’는 행정부 해석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달라지는 임시적 조치일 뿐이며, 일본도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일부 인정하는 판례가 있으나 일반화된 법리는 아니다. 프랑스는 손해배상 제한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은 전례가 있고, 독일은 오히려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사업장 점거를 금지함으로써 사용자 방어권을 강화했다. 즉, 한국의 법안처럼 명문화된 광범위한 사용자 책임 확대와 손해배상 제한은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오히려 국제 기준에 벗어난다.

    이번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은 ‘공정’과 ‘투명성’이라는 미명 아래 시장의 자율성과 기업 경영의 유연성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은 오히려 소액주주의 실익보다 법적 분쟁을 늘려 사모펀드나 행동주의 펀드 같은 자본이익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단기 배당 확대나 자산 매각은 기업의 장기 전략과 상충되며, 이사회가 미래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제도를 국회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간접 고용된 국회 비서관들의 인사 문제에 원내대표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고, 예산안 통과를 둘러싼 쟁의행위가 정당화된다면 국회는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기업이든 국회든 제도는 책임과 자율이 균형을 이룰 때 제대로 작동한다. 제도 개혁은 방향성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약도 한꺼번에 다 먹으면 독이 되듯, 제도 개혁도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주주권 강화, 노동자 보호, 지배구조 투명화라는 명분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일괄적·동시다발적 개혁은 제도적 충격을 키우고, 자본시장과 기업 생태계에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단기적인 정치적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의도한 대로 기능하고 시장 참여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지금은 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제도 간 균형을 점검할 시점이다. 개혁은 정답이 아니라 과정이며, 무엇보다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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