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의 트레이더’라는 거짓말로 지인들에게서 약 50억원을 가로챈 40대 여성을 상대로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그는 종교적 신앙심을 이용한 가스라이팅을 통해 주변 사람에게서 수년간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것으로 알려졌다.1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박모씨(47)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유사수신 등 혐의로 수사 중이다. 박씨는 허위 투자회사 제니스파트너스를 설립해 경기 고양에 사무실을 차리고 ‘원금과 수익 보장’을 앞세워 고소인 6명에게서 49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등에 따르면 박씨는 자신이 전직 목사 사모이자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주장하는 등 종교를 이용한 심리적 조작을 수년간 이어왔다. 박씨는 피해자들에게 “나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으로 해외선물 안전투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1명당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
특히 박씨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혼녀, 장애인 등을 주요 범행 표적으로 삼았다. 박씨는 전 남편의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려온 30대 김모씨에게 접근해 “집에 귀신이 있어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니 기도해야 한다. 나한테 투자해야 전 남편이 때리고 돈을 빼앗아 가지 않는다”고 속여 약 22억원을 뜯어냈다.
박씨는 자신의 범행이 들통나지 않도록 피해자들을 고립시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막았다. 각각의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퍼뜨려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박씨는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서울 특급호텔에 장기간 투숙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을 성공한 투자 전문가로 꾸미기도 했다. 이에 속은 피해자들은 카드론, 2·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등 빚까지 내며 투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박씨가 올해 3월 잠적했고,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사실을 깨닫고 공동으로 법적 조치를 취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금전적 사기가 아니라 ‘심리적 살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며 “특히 경제적·심리적 취약성을 가진 사람들이 심리 조작에 더 쉽게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