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129.68

  • 21.06
  • 0.51%
코스닥

919.67

  • 4.47
  • 0.49%
1/4

쌩~휙! 갤러리에 웬 회초리 소리가? [KIAF 프리즈 서울 2025]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쌩~휙! 갤러리에 웬 회초리 소리가? [KIAF 프리즈 서울 2025]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쌩~ 휙!”.


    고요한 갤러리에 울려 퍼지는 이 소리의 정체는 성능경(81) 작가의 싸리나무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다. 조용히 작품에 집중해야 할 갤러리의 침묵을 일부러 깨뜨리는 도발. 이는 성 작가가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걸어온 전위미술의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지금 서울 삼청동 백아트에서는 성 작가의 개인전 <쌩~ 휙!>이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초기 작업부터 올해 만든 최신작까지 80여 점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성 작가는 평생에 걸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온 한국 전위미술의 대표 작가다. 오랫동안 그는 ‘예술은 이런 것’ ‘이건 예술이 아니다’와 같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전시 제목이 된 신작 ‘싸리’가 대표적이다. 작가가 직접 깎은 싸리 회초리를 휘두르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한국 사회에서 회초리는 규율과 통제의 상징. 하지만 미술관에서 회초리를 휘두르는 건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탈이다. 이처럼 무엇이 예술인지를 결정하는 건 엄격한 규칙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과 사회적 맥락이다. 이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는 ‘삶과 예술에는 정해진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전한다.



    성능경에게 예술은 특별하고 어려운 게 아니다. 일상이 작품이 된다. 1998년에 제작한 ‘“걷다가” 외 9점’ 연작은 생활 속에서 쉽게 잊히는 감각과 단상을 기록한 드로잉을 모은 것. 올해 새롭게 선보인 ‘커피드로잉’은 더 흥미롭다. 작가가 매일 아침 드립 커피를 내린 뒤 커피 자국이 남은 키친타월을 모아놓은 작품이다.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마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성능경은 말한다.

    이처럼 그는 완성된 멋진 결과물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는 ‘흔적’에 주목한다. 커피 얼룩은 아침마다 반복하는 습관의 흔적이고, 드로잉은 스쳐 지나간 생각의 흔적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스러기, 얼룩, 메모 같은 소박한 것들에도 삶의 본질은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신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예술이 유식하고 여유로운 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전히 살아 있는 아방가르드


    냉전이 한창이던 1974년 작가는 ‘세계전도’를 발표했다. 대형 세계지도의 각국 영토를 모두 오려내 뒤섞어놓은 작품을 통해 그는 국가 간 갈등과 국제정치 질서를 벗어난 자유로운 세계를 상상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미국 지도의 각 주state로 같은 작업을 한 신작 ‘USA 전도’를 선보인다. 50여 년이 흘렀지만 성 작가의 문제의식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신문 기사를 오려내 마음대로 재조합해 읽는 대표 퍼포먼스 ‘신문 읽기’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언론 검열이 심하던 1970년대, 사회 모순을 꼬집으며 시작한 이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주제로 다시 펼쳐진다. 과거에 진행한 퍼포먼스가 오늘날의 사회적 상황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것이다.

    성능경의 작품을 ‘흘러간 시대를 담은 낡은 기록’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정관념에 도전했던 작가의 예술적 시도는 시간이 흘러도 그 의미를 새롭게 바꾸며 더 큰 존재감을 뿜어낸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