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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는 악, 배추는 선…산수화의 획을 뒤집은 작가,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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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는 악, 배추는 선…산수화의 획을 뒤집은 작가,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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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은 상실과 결핍을 수없이 경험한다. 이 감정에 파묻히느냐, 초월하느냐가 각자의 내일을 결정짓는다. 부정적 경험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들을 통해 일상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산수 시리즈 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허준 작가의 개인전 ‘시간을 타고 나무와 숲을 거닐다(Walking through trees and forests in Time)’이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진행된다. 30여 년에 걸친 그의 화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평면 회화부터 드로잉까지 2005년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작업한 작품 30여점이 걸린다. 작가는 공항에서 갑자기 겪은 공황장애 증상이나 사람을 대할 때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상황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전통 산수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해 왔다. 산수화에 등장하는 자연환경 중 특히 나무에 주목한 작품이 많다. 나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마다 인격과 생명력을 부여해 자신의 심리를 투영한다. 2005년 처음 선보인 산수시리즈 작업에서 이같은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후 그는 다양한 실험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작가가 20대 때 선보인 화면의 2/3 이상을 여백으로 남긴 전통 산수 작업 ‘여정’ 시리즈는 2010년대 ‘구름 속의 산책’ 시리즈로 이어지며 산속에서 느낀 기억의 풍경을 배경 없는 패턴화된 나무 작업으로 표현했다. 2021년부터 시작한 나무를 모델로 한 작업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작업실을 출퇴근하며 특정 장소의 나무를 관찰하고 해석해 풀어낸 상상화다.




    작가에게 나무와 숲은 오랫동안 작품의 주제를 이어오게 한 특별한 소재다. 설악산과 지리산, 호남 유명 지역의 트레킹 길을 걸으며 관찰한 나무들은 그의 예술 세계에서 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이외에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최근 그의 할아버지 남농 허건(南農 許楗)의 집을 기억의 모티브로 삼는다. 허건은 전통 남종화의 맥을 잇는 대표적 화가로,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이자 한국 남종화의 근대적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되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의 손자다. 허준은 남종화 계보를 잇는 5대째 직계 후손이다.




    작가는 목포 할아버지 집에서 봤던 수석(壽石)과 해송 등 분재와 난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스케치 없이 작업한 작품들은 곤충 표피와 같은 문양 같아 보이기도 하고 생동하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비롯한 모든 작품이 이번 개인전에서 공개된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실험적 드로잉을 중심으로 전시한 1관부터 2005년 전후 여백이 있는 종이에 먹으로 그린 여정 시리즈를 모아놓은 2관, 수묵채색의 현대적 산수화를 비롯해 팝아트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나무에 이르기까지 나무와 숲이 주제가 되는 3관(2층)에서 작가가 30년간 이어온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특히 눈여겨볼 작품은 1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SHE’. 사람 얼굴에 머리카락은 배추와 알타리 무의 이파리를 닮은 모습이다. 작가가 매일 잠자기 전 목적 없이 일기처럼 끄적인 낙서에서 시작된 것으로, 새로운 시도를 향한 작가 내면의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했다. 머리카락을 표현한 채소를 통해 선(善)과 악(惡)의 의미를 재치 있게 숨겨놓기도 했다고. 빳빳하고 드센 성질의 알타리 무는 악으로, 배추는 선으로 상정했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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