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국민의 기본권 문제로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국회가 여전히 판결의 무게에 걸맞은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소년·시민·아기기후소송과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청구인단 및 변호인단은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이 보장한 권리에 정부와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며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단순히 기한 맞추기가 아니라, 미래세대 권리를 보장하고 과학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헌재는 지난해 8월 29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헌법불합치 판결에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한 삶을 지켜야 하며 ▲미래세대에 감축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되고 ▲감축목표는 과학과 국제 기준에 따라 설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기후위기로부터의 보호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한 아시아 최초의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는 9월 2035년 감축목표 초안을 내고 불과 한 달여 만에 확정해 국제사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헌재 결정 취지를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구인들은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소년기후소송 청구인 김서경은 “5년 전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유는 개인 실천이나 정치 요구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헌재가 기본권을 중심에 둔 판결을 내린 만큼, 정부와 국회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김한나(당촌초 4학년)는 "지난해 우리의 목소리가 헌법으로 인정받아 희망을 봤지만, 지난 1년은 미래가 외면당한 시간이었다”며 “우리는 투표권이 없는 만큼 국가는 더 큰 책임감으로 우리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장 밖에서도 각계의 지지 성명이 이어졌다. 법률가 211명은 공동 성명을 통해 “기후대응은 국가의 헌법상 의무이자 국제법상 책임”이라며 이라며 “국회와 정부가 투명한 논의를 거쳐 1.5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사 1026명은 “기후재난 속에서 어린이·청소년의 꿈과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2035년 감축목표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을 향한 현재 세대의 의지를 담아야 한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소속 270명은 “눈앞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을 미루는 것은 미래세대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떠넘기는 일”이라며 “법과 정책 수립 과정에 기후위기 당사자인 어린이·청소년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장 발언도 이어졌다. 장범식 변호사(민변 환경보건위)는 “헌재는 감축목표를 국회가 법률로 정해야 하는 사항임을 분명히 했다”며 “정부가 단독으로 2035년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구 화동초 임성무 교사(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상임대표)는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정권이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며 “미래세대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헌재 결정문의 주요 구절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정부와 국회에 ▲기후위기를 국가적 위험으로 인정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킬 것 ▲2035년 감축목표를 과학과 국제적 책임에 맞게 정할 것 ▲불확실한 기술 의존을 중단하고 실효성 있고 일관된 기후정책을 수립·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또 지난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모든 국가에 1.5도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감축목표를 설정할 것을 권고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가의 기후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