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발레단은 엔데믹 이래 아시아의 소재를 서양 예술인 발레에 접목한 레퍼토리를 꾸준히 선보였다. 최근 뉴욕에서 이 단체는 <양산백과 축영대>라는 중국 고전을 옮겨온 '나비 연인(The Butterfly Lovers)'이란 창작 발레를 소개해 호평 받았다. 2년 전인 2023년에는 홍콩발레단 고유의 '로미오+줄리엣'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로미오+줄리엣' 내한 공연에 앞서, 홍콩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셉팀 웨버 예술감독(64)을 미리 만나봤다.

홍콩발레단이 보여줄 '로미오+줄리엣'의 배경은 1960년대 초 홍콩이다. 웨버 감독은 이 시기를 '홍콩의 황금기'로 봤다. 그는 이 기간에 대해 "제조업과 부동산으로 부가 창출됐고 이민자들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면서 홍콩은 국제 도시로 발돋움했다. 이런 배경이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완벽하다고 생각했다"며 창작 배경을 밝혔다. 17년동안 미국 워싱턴발레단에서 예술감독을 지냈던 그가 2017년 아시아로 이주한 것은 큰 결심이었다. 2017년 홍콩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2021년 세상에 내놨다. 웨버 감독은 "'로미오+줄리엣'은 홍콩으로 이주한 자신이 이곳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자료 조사를 했고 팬데믹 기간에 작업하면서 연습 시간은 더욱 길어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했다. "홍콩 거리를 거닐다 마작방에 우연히 들러 몇시간동안 게임을 지켜봤어요. 극장 계단에서 결혼 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들도 만날 수 있었고요. 제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홍콩의 고전만화 <올드 마스터 Q> 등 홍콩의 모든 것이 로미오+줄리엣을 향하는 영감이 돼 주었습니다." 발레와 쿵푸를 비롯한 홍콩 문화의 독특한 결합은 작품에 강인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웨버 감독은 "작품 전반에 빛을 발하는 홍콩의 활기찬 모습에 한국 관객들이 매료됐으면 한다"고 했다.
홍콩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이 작품을 위해 6개월간 정통 홍콩식 쿵푸를 배웠다. "발레 무용수는 몸을 위로 들어올리고 선을 길게 늘이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반면 홍콩 쿵푸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꽉 조이는듯한 느낌이 이어집니다. 무용수들이 무게중심을 땅으로 낮추기 위해 수개월의 훈련이 필요했죠." 클래식한 감성을 유지하되, 오늘날의 느낌을 담은 안무를 창작하는 것이 웨버 감독의 과업이었다.

작중 인물도 이 시대에 맞게 각색됐다. 줄리엣의 아버지는 사회적 지위를 위해 딸을 부유한 서양인과 결혼시키려는 상하이 출신 인물로, 티볼트는 줄리엣의 어머니와 불륜 관계인 삼합회(홍콩의 유명 조직폭력단)의 보스로 설정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마주칠 법한 거친 환경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수하고 연약한 사랑을 부각하길 원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음악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만든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대로 쓴다. 감독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발레를 위해 쓰인 20세기 최고의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이 음악이 이야기의 길잡이가 돼 준다"고 설명했다.
웨버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인간성과 세상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며 "배경을 바꾼다해서 원전이 퇴색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비극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홍콩의 역동성과 모든 형태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해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