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 기준 1년 반 치나 되는 1700%의 성과급을 놓고도 적다고 아우성이 나오는 SK하이닉스. 시곗바늘을 20여 년 전으로 돌려놓고 보면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로 사명이 바뀐 2001년 매출 5조2887억원에 영업적자가 1조9102억원, 바로 회사 문을 닫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이천 공장의 전기료 낼 돈이 없어서 한국전력에 통 사정했을 때다. 그런 회사가 지금 어떻게 변했는가. 2003년 3월 26일 125원까지 떨어진 주가는 어제 종가로 26만원이다. 과거 21 대 1 감자를 감안하더라도 100배가량 올랐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대박으로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30조원대다. SK가 인수하기 전 한때 거론되던 것처럼 하이닉스가 중국에 팔렸다면. 제정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 것에 견줄 수 있는 국부 유출이었을 게다.
‘뒤웅박 팔자’는 봉건시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업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한·미 동맹의 린치핀으로 부상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의 주역 한화오션도 그런 사례다. 옛 대우조선이 잘나가던 시절의 거제시 옥포동에는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돈이 흔했다. 하지만 국내 조선 3사 체제에서 가장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은 대우조선은 2010년대 중반 조선업 불황에 따른 대규모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산업은행 관리체제로 들어갔다. 그런 회사가 한화로 넘어온 뒤 미국 조선업 부활의 선봉장 역할을 맡을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한화의 인수 과정 역시 곡절을 거듭했다. 2008년 6조3000억원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1200억원의 계약금만 떼였는데, 이것이 전화위복이었다. 14년 뒤인 2022년 3분의 1인 2조원에 인수했으니 말이다.
인류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가 기업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하듯, 기업의 명운 역시 흥망성쇠의 연속이라 흥미롭다. 한때 어렵다고 내칠 것이 아니라 제2의 SK하이닉스, 제3의 한화오션이 지속해서 나오도록 국가적 역량을 모을 때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