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7일 08:0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K뷰티 열풍으로 관련 기업의 몸값이 치솟는 가운데 외부 자금에 기대지 않고 독자 성장 노선을 택한 신흥 강자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스스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킨케어 브랜드 '아누아'를 운영하는 더파운더즈에 사모펀드(PEF)와 밴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이 앞다퉈 접촉에 나서고 있다. 에이피알이 시가총액 8조원대를 기록하고, 구다이글로벌이 4조4000억원 가치로 투자 유치를 성사시키는 등 K뷰티 기업들이 잇따라 고평가를 받자 투자자들도 ‘다음 주자’ 찾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더파운더즈는 외부자금 수혈보다는 자체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당분간 투자유치나 기업공개(IPO) 계획 또한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이선형·이창주 공동대표가 설립한 더파운더즈는 화장품 브랜드 운영사 중에서도 유독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4278억원으로, 전년(1432억원) 대비 무려 299%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00억원에서 1457억원으로 3배 이상 상승했다. 이중 매출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고 있다.
더파운더즈의 창업자들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뷰티 업계 경험보다는 데이터 분석과 경영 전략을 무기로 뷰티 시장에 뛰어들었다. 회사는 컨설팅사 출신 인재들을 주요 직책에 영입하고 제품 기획과 마케팅을 철저히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 리뷰, 재구매율, SNS 반응 등을 분석해 제품 개선과 신제품 기획에 반영하고 틱톡·아마존 리뷰 같은 숏폼·이커머스 지표를 나침반으로 삼아 마케팅 방향을 설정하는 점도 특징이다. 판매 채널도 아마존·울타뷰티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면서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마스크팩 ‘바이오던스’로 급부상한 뷰티셀렉션도 투자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오던스 역시 제품력과 디지털 마케팅을 결합해 글로벌 히트 브랜드로 떠올랐다. ‘붙이고 자면 투명해지는 겔 마스크팩’이라는 직관적인 체험 요소가 숏폼 콘텐츠에 최적화되면서 틱톡에서 수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아마존, 세포라, 부츠 등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넓히며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사이버먼데이(BFCM) 기간 뷰티·퍼스널케어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스크팩이 터지면서 회사 실적은 퀀텀 점플르 했다. 2023년 매출 415억원에 46억원의 영업손실 낸 뷰티셀렉션은 지난해 매출 1356억원 영업이익 267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뷰티셀렉션은 인플루언서 협업 기반의 커머스 기업으로 출발해 소비자 반응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활용하는 역량을 보유한 회사다. 어떤 제품이 콘텐츠화되면 소비자 반응을 얻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바이오던스에도 적용한 셈이다. 창업자인 박재빈 대표는 글로벌 영상 플랫폼 ‘아자르’를 키운 IT 기업 하이퍼커넥트 출신으로, 데이터 분석과 플랫폼 전략에 강점을 지녔다. 김미화 CPO는 화장품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제품 개발과 소비자 경험을 총괄한다. 두 창업자의 배경이 결합되며 뷰티셀렉션이 기술 기반의 성장 전략과 제품력 중심의 기획 역량을 동시에 갖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회사는 2022년 3000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후속 투자를 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회사는 당분간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유럽 등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어 외부 자금을 받기보다는 바이오던스의 자체적인 성장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화장품 시장이 직관과 유행에 기대 제품을 내놓았다면, K뷰티 신흥 강자들은 데이터 분석과 글로벌 플랫폼을 무기로 삼고 있다”며 “두 회사는 글로벌 디지털 채널을 기반으로 제품 기획과 마케팅을 정밀하게 운영한 점이 고속 성장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잘 되는 화장품 기업은 외부 투자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화장품은 판매가 대비 제조원가율이 15% 안팎에 불과해 운전자본 부담이 크지 않다. 다른 제조업처럼 원자재를 사들이고 재고를 쌓는 과정에서 자금이 묶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기있는 제품은 재고가 잘 쌓이지 않을 뿐더러 소비재 특성상 현금 회전율이 빠른 덕에 자체 영업현금만으로도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글로벌 확장 역시 현지 법인이나 대규모 물류센터를 세우기보다 이미 구축된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가벼운 확장’이 가능하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히트친 뷰티 브랜드는 자체 현금흐름과 플랫폼 전략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해 굳이 지분을 희석시키면서까지 외부 자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