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인 ‘실세’ 금융감독원장에게 전 금융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14일 취임 이후 대내외 발언을 통해 한껏 몸을 낮추고 있지만 생산적 금융, 교육세율 인상 등 ‘상생 압박’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조만간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실세 원장의 조용한 행보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사진)은 이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가 첫 과제로 꼽은 것은 ‘내부 조직 다지기’였다. 첫 점심 식사 자리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직원들을 초대했다. 합동대응단은 이 대통령이 “주가 조작범은 반드시 패가망신시켜야 한다”고 지시한 이후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 세 기관이 모여 출범한 조직이다.하지만 합동대응단 내부에서 금감원 직원과 거래소 직원 간 ‘밥값 논쟁’이 벌어진 사실이 알려지자 이 원장이 해당 직원들을 불러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세’ 원장으로서 과격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이 원장은 이날 임원들과의 티타임 자리에서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독단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충분한 내부 의견 수렴 및 소통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취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겸손한 성품인 데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면서 임기 초반 더욱 몸을 낮추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불안감 휩싸인 금융권
이 원장의 조용한 초반 행보와 달리 시장의 우려는 적지 않다. 과거 보험, 연금, 국가 재정 등 주요 현안을 두고 강성 발언을 해온 이력 탓이다. 이 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 등을 지내는 동안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뇌물 제공자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을 반드시 추적해 몰수해야 한다’, ‘기금 운용을 금융전문가에게 맡겨두면 필연적으로 단기 성과나 고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등 과격한 의견을 피력했다. 보건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에 몸담을 당시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을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발표하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금융권에서는 생산적 금융, 교육세 증세 등 새 정부 들어 이어지는 압박을 이 원장이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측근이 감독당국 수장을 맡으면서 금융권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고 털어놨다.
외국인들은 이날 국내 금융주를 대거 팔아치웠다. KB금융은 5.3% 급락한 10만7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신한지주(-2.32%), 하나금융지주(-4.06%), 우리금융지주(-2.95%) 등도 일제히 하락했다.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은 지난달 25일 12만6600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한 달도 채 안 돼 고점 대비 15.32% 하락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새 정부 초기만 해도 금융주를 최선호주로 꼽는 외국계 투자은행(IB)이 많았다”며 “하지만 금융사를 사실상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보는 정부 정책이 잇따라 나오면서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박재원/서형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