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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DMZ에 양혜규가 꿀벌 '봉희'를 풀어 춤추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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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DMZ에 양혜규가 꿀벌 '봉희'를 풀어 춤추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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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비무장지대(DMZ) 일대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군사적 통제는 물론,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이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자연스레 접근과 개발이 통제됐다. 반대로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를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됐다.

    자연스럽게 보존된 DMZ의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현대미술전시 ‘언두 디엠지Undo DMZ’가 파주 DMZ 일대에서 11월 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가 개최하는 ‘DMZ OPEN 페스티벌’ 행사 중 하나다. 전시를 시작으로 콘서트, 국제음악제, 마라톤대회, 포럼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




    “그간 정치적인 측면에서 DMZ의 상황을 얘기했다면 2~3년 전부터는 DMZ의 생태를 다뤄왔습니다. 특히 올해 전시는 전쟁이 끝난 후 이곳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 봤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큐레이터(現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의 말이다. 지난 70여년 간 긴장과 전쟁의 잔재로 존재한 비무장지대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얘기다.



    한반도 생태계의 보고 조망하는 10명의 작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 10명의 작품 총 26점이 민통선 내 통일촌 마을, 갤러리그리브스, 그리고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전시된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 공간 통일촌 내 수매창고는 농산물·농작물 등을 수거하고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다 방치된 곳을 참여 작가들이 함께 청소하며 조성했다고. 이곳에는 신라시대 석대암 설화와 오늘날 분단의 현실을 콜라주 작업으로 완성한 원성원 작가와 DMZ를 횡단하며 관찰·기록해 조류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는 아드리안 괼너, 민통선 지역의 오브제와 흙을 바탕으로 미생물로 이루어진 도시적 생태 구조를 완성한 실라스 이노우에, 새벽녘 별빛과 전쟁의 흔적인 남은 장소를 병치해 시간의 축적과 인간 문명의 흔적을 김태동 작가의 작품이 나와 있다.




    창고 한편에서는 양혜규 작가의 영상 작업이 상영된다. 꿀벌 ‘봉희’가 분단과 냉전, 긴장과 충돌로 점철된 인간 세계를 돌아보는 6분 길이의 영상물 ‘황색 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양혜규 작가는 AI로 생성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공간을 환상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평소 많이 접하지 않은 매체를 활용하는 데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원하는 바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려니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쳤는데, 이런 와중에 큰 힘이 된 것이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입니다. 보통 톤을 쌓아 멜로디와 화음을 만드는데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톤을 마사지 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톤이 그 주변을 맴돌고, 심지어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건드려요. 윤이상 선생님의 인생을 작품에 사용된 음악과 중첩시켜 감상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황색 춤’의 스크린 벽 뒷면은 2020년 작업한 벽지 작품 ‘디엠지 비행’으로 감싸져 있다. 꽃가루와 로봇 벌, 태양광 패널, 휴대용 손 선풍기, 수력 발전 댐 등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이 뒤엉킨 평면이다. 이번 전시 제목인 ‘언두 디엠지(Undo DMZ)’는 이 작품의 제목인 ‘디엠지 비행’의 영문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날아서는 갈 수 있지만 한자 아닐 비(非)에 갈 행(行)을 쓰면 다닐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도 된다. 이외에도 탈선이나 행하지 않음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이 의미가 이 작품이 비무장지대의 복합적인 조감도임을 암시한다. '언두(Undo)‘는 흔히 ‘되돌리다’, '원상태로 하다'로 번역되지만, '열다', '풀다'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접근이 통제됨으로써 야생성과 생명 다양성이 회복되고 있는 현재의 디엠지를 조망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식물 표본부터 사운드까지 다매체 실험실


    이번 전시에는 그 흔한 회화 작품이 한 점도 없다. 특정 공간의 소리풍경을 담은 사운드스케이프 작품부터 사진 콜라주 작업, 애니메이션 영상물, 액침 표본 설치, 업사이클링 디자인 작업까지 다양한 매체와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특히 2019년부터 DMZ 파주권역의 독특한 생태 환경을 조사한 박준식 작가는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현장에서 수집한 다양한 동·식물의 잔해를 액침과 건조 기법으로 보존한 액침 표본을 전시 및 프로젝트 공간인 ‘DMZ 문화예술공간 통’에서 소개한다. 특히 그는 이번 전시 기획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도맡았다. 김선정 큐레이터는 “3년 전부터 통일촌 마을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 짬을 내 들릴 때마다 박준식 작가가 마을의 다양한 부분을 소개해 주는 것은 물론, 수매창고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끔 마을 이장님과 소통 창구 역할을 자청하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임진각 평화누리에서는 두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상민 작가의 ‘빛: 자연과 선(線)의 틈에서’와 원성원 작가의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다. 이 작품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의 유래에서 남북의 화해와 치유를 그린다. 이곳에서는 사방이 뻥 뚫린 넓은 잔디 언덕에서 햇살을 맞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 특히 오상민 작가의 작품은 쨍한 햇빛을 받으면 마치 바닷물 위로 내리쬐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윤슬처럼 눈부신 빛을 낸다. 작품에 사용된 특별한 소재 때문이다.



    DMZ의 철조망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철사와 방탄복 보호 장갑 등에 주로 사용되는 첨단 산업 소재 아라미드 등을 엮어 새로운 형태의 실을 만들었다. 이 실로 DMZ 전역에서 자생하는 덩굴식물인 청가시덩굴, 뚜껑덩굴, 큰닭의덩굴, 벌깨덩굴, 쥐방울덩굴 등 여섯 종을 모티프 삼아 작품을 만들었다. 특수한 실을 다룰 수 있는 곳이 없어 프랑스 파리의 텍스타일 연구소를 네 번이나 왕복하며 완성했다고. 각도에 따라 텍스타일에 비치는 질감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쓸모를 다한 군복이나 낙하산 등으로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의 작업, DMZ로 날아오는 두루미들을 관찰한 후 여덟 쌍의 두루미 발 모양을 본 떠 하얀 모래 위에 설치된 홍영인 작가의 작품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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