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과 한국을 잇는 시인의 노래
'바이로이트가 사랑한 성악가', '현존하는 최고의 베이스'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연광철은 이번 무대를 통해 독일과 한국을 잇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압축해 선보였다. 공연 프로그램은 'Dichterlied(시인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독일과 한국의 시로 쓰 가곡들이다. 연광철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 브람스가 곡을 입힌 독일 가곡을 비롯해 김동명, 김소월, 박목월의 시로 쓰 한국 가곡을 박은식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했다.
베이스 연광철은 괴테의 시에 음악으로 활기를 입힌 슈베르트의 가니메드(D.544_도이치 작품번호), 비밀(D.719), 뮤즈의 아들(D.764) 등 예술가곡 세 곡으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노래에서 같은 가사를 두 번 반복할 때 해석과 표현이 달라야 하는 것은 성악가에게 정설로 여겨진다. 연광철은 슈베르트의 비밀을 노래할 때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라는 독일어를 처음은 의문을 제기하듯, 두 번째는 답을 찾아 확신을 갖게 된 듯 노래했다.
브람스가 연모하던 클라라 슈만의 죽음을 겪고 쓴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중 제1곡 '사람에게 임하는 일은 짐승에게도 임하나니'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은식의 섬세한 전주가 백미였다. 여러 연주에서 장엄하고 웅장한 반주로 들어오던 첫소리를 부드럽고 따뜻한 터치로 제시했고 연광철은 특유의 깊은 저음으로 숭고한 음악을 들려줬다. 아름다움과 엄숙함의 대비가 극적이었다.

한국 성악계의 성공 신화
지금은 한국과 독일에서 성공한 성악가로 인정받지만 베이스 연광철은 한국 성악계에서 '비주류의 성공 신화'다. 충북 충주 출신인 그는 충주공고와 청주사범대를 졸업한 뒤 해외에서 먼저 커리어를 쌓고 한국으로 '역수입'됐다. 2003년, 한 온라인 성악 커뮤니티에 올라 온 그의 공연 소식에 '북한 성악가가 아니냐?'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그의 이름은 낯설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 성악도들이 해외 성악가들의 음원과 영상을 접할 수 있었던 다음 카페 '대가네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에서 '크방츌 윤(Kwangchul Youn)'은 이미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2012년, 독일 베를린에서 연광철의 독보적 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를린필하모닉과 베를린 방송합창단을 지휘한 엘가 <제론티우스의 꿈> 무대에 베이스 솔리스트로 올랐다. 리허설 휴식 시간, 바렌보임은 그에게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우며 'Traumhaftlich(꿈결 같다)'를 외쳤다. 바그너 오페라의 성지인 바이로이트에서 오페라를 보고, 그의 목소리에 매료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한국에 올 때마다, 연광철을 만나고 싶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관객 방해에 무너진 집중
세계적 성악가 연광철의 음악적 해석이 집중된 이날,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1부의 마지막 순서인 한국 가곡 스테이지에서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김동명 작시에 김동진이 곡을 입힌 '수선화' 연주 중,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를 노래하는 연광철이 피아니시모로 장내를 울려내는 순간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가 내뿜은 호흡과 가사로 뱉은 시, 공간을 울려낸 음(音)만이 장내를 가득 채운 순간, 객석에서 울린 휴대폰 알림음에 노래하던 성악가도 잠시 주의를 뺏겼다. 하지만 세계 주요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성악가의 대처는 탁월했다. 연광철은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라는 마지막 소절을 이날 들려준 울림 중 가장 여린 세기로 노래하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다.

공연의 2부에선,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내용을 기반으로 쓰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세 곡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 대한 연광철의 해석은 가히 세계적이다. 국내에서 그의 이름이 생소했던 2003년, LG아트센터 초청으로 가진 독창회에서 같은 시에 슈베르트가 음악을 입힌 작품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연광철이 선보인 무대는 압도적이었지만, 청중의 반복된 실수가 옥에 티였다. 연광철이 하프 연주자의 노래 중 제3곡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 없는 자'에서 격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려는 순간, 또 휴대폰 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욱이, 마지막 한국 가곡 무대에서, 한 관객이 녹음 버튼을 누르며 발생한 알림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관객을 배려했다. 그는 15곡을 연이어 노래한 후에 자신의 공연을 찾은 관객들에게 세 곡의 앙코르를 들려줬다. 김순애 곡 '그대 있음에',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침', 장일남의 '신고산 타령'을 연달아 연주했다.

연광철은 끝까지 흔들림 없이 음악을 완성했다.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성악가의 목소리는 노화를 전제로 연주된다. 영속할 수 없는 순간을 성숙하지 못한 관객 매너가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의 가곡 리사이틀 무대엔 마이크도, 화려한 조명 장치도 없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그랜드 피아노와 종이 악보만으로 2,500석 공연장을 울려낸 그의 목소리는 성악이라는 장르의 본질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