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광복 80주년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의 무게중심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두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과거사 문제를 언급했지만 강제징용과 위안부 같은 구체적 사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오는 23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일본에 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日은 마당 같이 쓰는 이웃”
이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일 관계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미래’라는 표현을 네 차례, ‘신뢰’라는 단어를 세 차례 썼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신뢰를 두텁게 쌓으면서 미래를 향해 가자는 취지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설명했다.이 대통령은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수교 60주년”이라고 말한 뒤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 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을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 이웃’,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양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과거사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굴곡진 역사를 공유해왔기에 일본과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늘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였다”며 “우리 곁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이 많이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신뢰가 두터울수록 협력의 질도 높아지게 마련”이라며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참모들은 이 대통령의 과거사 언급이 일본을 상대로 직접적 사과를 요구했다기보다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에 배려와 노력을 당부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축사 중 한·일 관계 관련 발언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말이 핵심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 통상·안보 환경과 첨단 기술 발전에 한·일 양국이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엄중한 역내 안보 사안과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흐름 등에서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거사 강조한 文과 차별화
이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는 윤석열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와도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이후 위안부 합의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연이어 나왔고, 이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이어지며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이 대통령의 대일 정책 기조는 과거사 문제와 협력 강화의 투 트랙 전략을 취하면서도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원칙으로 셔틀외교를 통해 자주 만나고 솔직히 대화하면서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래 협력 의지를 다져가야 할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수위를 조절했다”고 밝혔다.
한재영/정상원 기자 j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