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실험적인 음악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기획사 융폰마트(Jung von Matt)가 기후위기 인식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로, 2050년의 기후 조건을 반영해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해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후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사계’(The [Uncertain] Four Seasons)라는 이름으로 확대됐고,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융폰마트 설립자인 장 레미 폰 마트의 책 <결론(Am Ende)>이 최근 독일에서 인기다. 창의성에 관한 저자의 철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는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최상위권 목록에 올랐다. 무엇이든 실행으로 옮기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 수도원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니며 힘들었던 기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까지의 노력과 도전, 세계 광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광고가 탄생할 수 있었던 혁신 사례, 그리고 창의성을 추구하면서 얻은 경험과 통찰 등 책에는 ‘광고업계의 전설’로 자리한 장 레미 폰 마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공개된다.

융폰마트가 기획한 기억에 남을 만한 광고 캠페인 중 하나는 독일 렌터카 회사 식스트(Sixt)의 ‘인색함은 멋지지 않아요’(Geiz ist doch nicht geil) 이미지 광고다. 거지 복장을 한 두 남자가 ‘인색함은 멋지지 않아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은 소비자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식스트는 이 광고를 통해 싼 가격에만 집중하는 경쟁사와 차별화하고, 안전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철학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거지 복장을 한 두 남자가 융폰마트 설립자 홀거 융과 장 레미 폰 마트였다는 것이다.
책은 이 이미지 광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식스트 광고대행사로서 융폰마트의 업무가 늘어나면서 수수료 인상 필요성이 제기됐다. 저자는 뛰어난 협상가인 식스트 회장과의 만남을 앞두고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자신과 자신의 파트너를 구걸하는 거지처럼 그린 스케치를 보여주면서 광고 수수료를 인상해주지 않으면 스케치를 공항과 주요 신문에 게재하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잠깐 그 스케치를 바라본 식스트 회장은 “정말 한번 해볼까요?”라고 답했고, 그렇게 해서 실제 거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등장하는 이미지 광고가 탄생했다. 저자가 식스트 회장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인색함은 멋지지 않아요’는 그대로 식스트 광고 문구로 채택됐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광고가 됐다.
‘창의성의 대가’답게 저자는 책의 목차와 구성에도 기발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의 실망감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섯 명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편집자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꾸렸고, 감동과 재미를 기준으로 각 이야기의 점수를 매겼다. 10점 만점 기준으로 5점 이하를 받은 이야기는 아예 제외했고, 엄격한 심사에서 살아남은 77개의 이야기를 점수순으로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뒤로 갈수록 재미없어지는 책’이 탄생했다.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