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아버지보다 내 키가 커진 걸 알았다. 늘 나를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날 나란히 서서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한 말이다. “내 키를 넘어섰구나. 더 많은 걸 봐라. 나는 내 키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평생 직접 가서 봐야 했다. 그러나 너는 내가 그렇게 가서야 본 데를 여기 서서도 보지 않느냐? 그러니 더 멀리 보아라.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단순히 키나 눈높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의 경험과 통찰,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소망에 관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덧붙여 자식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큰 것을 이루는 일이 부모로서 가장 큰 기쁨이라며 여러 고사성어를 언급했지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정확한 표현은 이 두 가지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먼저 얘기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순자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編)에 학문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글에 나온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藍·한해살이 풀로 잎은 염료로 쓰임)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에서 비롯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고, 후손이 선조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세대 간의 발전과 진보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세상을 더 넓고 더 깊이 보게 될 내 미래를 미리 기뻐하며,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을 통해 느끼는 최고의 보람이라 말한 것이다.
그날 내게 건넨 말의 핵심은 ‘멀리 보아라’였다. 이 또한 고대의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인용한 고사성어가 ‘갱상일루(更上一樓)’다. 다시 누각의 한 층을 오른다는 뜻으로, 멀리 내다보려면 높이 올라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시 ‘등관작루(登?雀樓)’의 마지막 구절 “높이 보려면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에서 유래했다. 단기적 시야를 넘어 장기적인 안목과 통찰을 가지라는 뜻이다. 당장의 이익이나 눈앞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높은 곳에서, 넓은 시야로 사물과 인생을 바라보라는 가르침이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며 나의 눈높이를 축복했다. 단지 키가 컸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경계선 위에 선 내가, 당신이 걸어온 길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바랐던 것이다.
고사성어 청출어람에는 발전의 기쁨이 담겨 있다. 자신의 경험과 노력을 전수한 사람이 그 열매가 자신보다 더 풍성하게 열리는 것을 보는 일. 그것은 스승의, 그리고 부모의 가장 큰 영광이다. 갱상일루는 그런 발전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단지 과거를 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며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을 일깨운다.
우리는 유례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정보는 실시간으로 넘쳐 흐른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일수록 ‘멀리 보는 눈’이 더욱 중요하다. 단순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 방향을 찾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한 세대 위의 시선에서 배워야 한다.
아버지가 내게 건넨 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사성어들은 단지 옛말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지혜의 언어이다. 우리는 그 말들을 통해 세대를 초월한 가르침과 따뜻한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를 보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그의 삶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그 삶이 나의 발판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랑의 언어였다.
멀리 보아라. 키가 자란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넓게, 더 깊게,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만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고,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걸음마를 이제 막 뗀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니 멀리 보아라. 네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가 평생 걸어가며 보았던 그 곳을 이미 보고 있다면, 이제는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너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너를 보니, 나는 그저 출발점이었구나. 넌 더 멀리 보아라.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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