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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재기발랄함 잃은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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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재기발랄함 잃은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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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 사이로 새빨간 매니큐어가 발린 손이 비집고 들어온다.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리고 너머에는 눈에 독기를 가득 품은 여자가 엘리베이터 속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여자는 다짜고짜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의 무차별 공격에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맞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여자의 얼굴을 본다. 바로 그 여자다. 낮에 본 빵집 여자. 한없이 청초했던 이 여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악마가 이사왔다>는 말 그대로 악마가 들린 여자가 아랫집으로 이사를 오며 생겨나는 해프닝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영화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할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백수, ‘길구’ (안보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아랫집 이웃이자 동네 빵집의 파티쉐인, ‘선지’ (윤아)가 밤만 되면 무언가에 빙의한 듯 미쳐 날뛰는 것을 목격하고 그 뒤를 쫓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잠복근무(?)는 오래 가지 못한다. 선지의 아버지, ‘장수’ (성동일)가 길구의 미행을 잡아낸 것이다. 그러나 장수는 선하기 그지없는 인상과 인품을 가진 길구에게 마음을 열고 길구에게 선지의 가계(家系)에 있었던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상 <악마가 이사왔다>의 ‘악마’는 오컬트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사탄이 아닌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 ‘귀신’이다. 어떤 사건에 의해 희생당한 영혼이 선지의 증조할머니에게 들러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대대로 후손들에 기생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이는 과거 사또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밤마다 찾아오는 소복 귀신이 등장하는 괴기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여리고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가 귀신이 들어올 때면 온갖 기행과 악행을 저지르며 생기는 코미디적인 상황극, 그리고 여성 캐릭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그녀를 지켜주고자 하는 남성 캐릭터의 지고지순한 애정을 그리는 멜로드라마를 혼합한 로맨틱 코미디다.





    사고뭉치 여자와 그녀의 사고를 끊임없이 수습하는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물 구성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는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2001) 를, 지고지순한 남자가 귀신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구미호> (박헌수, 1994)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못하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장르적, 혹은 이야기적 관습을 변주나 진보가 없는 클리쉐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적 설정이 설득력을 크게 결핍하고 있다는 점도 영화를 아쉽게 만드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이번 영화에서 주요한 이야기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이는 선지의 변신, 즉 그녀가 귀신에 빙의할 때마다 헤어스타일과 화장, 손톱이 요란하게 바뀐다는 설정은 (동생이 그녀가 빙의되는 시간에 맞춰 변신을 돕는다는 설정이 있음에도) 영화적 허용을 최대한 고려해도 억지스럽거나 유아적인 부분이다. 가령 외모의 변화, 혹은 메이크업의 변화보다 선지의 몸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는 혼령, ‘문향’의 생전 모습 혹은 특징을 반영한 설정이 더 영리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영화는 길구가 선지를 향해 키워가는 사랑과 문향에게 생겨나는 연민과 애정을 동시에 그리면서 궁극적으로는 이 모두가 원하는 것을 충족하는 모호한 감정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유사 삼각 관계적인 설정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악마가 이사왔다>는 캐릭터의 구성면에서도 이야기의 빌드 업 혹은 방향의 맥락에서도 실패한 지점을 더 많이 보여주는 아쉬운 작품이다. 이번 영화의 연출, 이상근 감독이 전작 <엑시트>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하고도 공감 가능한 인물과 상황극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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