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한 여성을 진찰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딱히 열이 높은 것도 아니고, 특정한 병의 징후도 찾기 어려웠다. 그녀가 앓는 이유는 흑담즙으로 인한 우울이거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떤 슬픔일 가능성이 컸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의 진료 기록 중 한 대목이다. 그는 여성과 대화를 시작하며 맥박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특정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맥박이 빨라졌다. “아하!” 그는 여성의 증세가 신체적 조건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정서적 감정에서 비롯된 ‘사랑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마음 상태가 신체 반응을 자극하는 것을 임상학적으로 처음 기록한 갈레노스는 “병은 마음에서 오고, 건강은 정신의 평온과 신체의 균형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마음 치료하는 심의(心醫)가 1등
그보다 600년 전에 태어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건강 장수의 비결을 심신 균형에서 찾았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건강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으로 병들고, 마음으로 치유된다”는 이들의 지론은 뇌와 면역, 감정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현대 ‘심신의학’의 준거가 됐다. 영어 단어 ‘병(disease)’이 부정의 뜻을 담은 접두사(dis)와 안심·여유·편안함을 의미하는 명사(ease)의 조합으로 이뤄졌으니 더욱 의미심장하다.
동양에서도 육체의 치유가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조선 세조 때 펴낸 <팔의론(八醫論)>은 의사를 여덟 등급으로 나누고 마음을 고쳐 병을 치료하는 ‘심의(心醫)’를 1등급으로 쳤다. 허준 역시 “마음이 산란하면 병이 생기고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되면 있던 병도 저절로 낫는다”고 <동의보감>에 썼다. 한자어 ‘병(病)’은 ‘질병’과 ‘근심’을 동시에 뜻한다.
요즘은 모든 게 더 복잡해져서 편할 날이 거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과 분노가 일어난다. 이럴 때 내 마음의 주치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방주사처럼 미리 맞을 ‘마음 백신’은 따로 없을까. 수천 년 전 의학자와 철학자, 문인들도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왔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혼란을 이겨내고, 고통 속에서 평온을 찾으며, 긍정과 낙관의 미학을 삶에 적용했다. 그 과정에서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갈레노스는 로마 황제 4명의 주치의로 이름을 떨쳤다. <명상록>을 쓴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의 ‘환자’였다. 아우렐리우스는 갈레노스의 조언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익혔다. 당시 로마는 화려해 보였지만 역병과 전쟁, 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모든 고통을 외부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도 밤새 <명상록>을 쓰며 ‘내면의 방패’를 담금질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세상의 파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 안의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지킬 수는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기 마음을 지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인간이 아무리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 해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적 진실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품위와 낙관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비극을 통해 비관을 극복하자고 했다. 말년에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많은 것을 보게 되면서도 많은 것을 용서하게 된다는 뜻”이라며 긍정과 포용의 의미를 탐색했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도 그랬다. 그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내전을 겪으며 친구와 가족을 잃고, 암살 위협까지 받았다. 어느 날 모든 공직을 내려놓은 그는 독방에 들어가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는 남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내면은 조율할 수 있다.” 그의 글은 감정을 다스리는 고전이자, 불안을 잠재우는 영혼의 치료제였다. 그의 역작 <에세>는 지금도 심리상담에 활용되고 있다.
최고의 명약은 낙관성과 웃음
독일 문호 괴테는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성장과 치유에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80세에도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배울 것이 많다”며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감정과 생리적 리듬을 조화시키려 했다. 그의 손자가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비 오는 날에도 꽃 하나 피어난 걸 기뻐하며 시를 읊조렸다”고 했듯이, 꽃 한 송이의 사소한 충만함에서도 기쁨을 찾는 자세가 곧 그의 마음치유법이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이었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마음 백신’으로 삼았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아내와 딸을 잃었을 때도 그는 유머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이 없다면 유머도 없다”면서 “인간은 웃을 줄 알기에 절망을 견딘다”고 역설했다. 말년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은 웃음”이라며 “내 장례식이 너무 슬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유머야말로 깊은 상처와 슬픔에서 길어 올린 긍정과 치유의 양약이었다.
이들의 삶을 보면 진정한 평온은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고통의 시기를 지나면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도 내면의 ‘마음 백신’ 덕분이었다. 소포클레스와 히포크라테스가 90세까지 장수하고, 괴테가 82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던 힘 또한 그 속에서 나왔다. 나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들의 ‘내면 방패’를 꺼내 새롭게 무장하고 속을 더욱 단단히 다져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