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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버스·키오스크 불능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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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버스·키오스크 불능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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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시내버스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을 때다. 서울역 인근 정류장에 멈춘 버스를 오르던 한 할머니가 1000원짜리 지폐 한 장과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들고 머뭇거렸다. 버스 요금에 딱 맞는 액수지만 현금통 대신 마주한 ‘현금 없는 버스’란 표지 앞에서 그는 운전기사의 표정만 살폈다. “이거 못 받아요. 다음부턴 카드로 내세요.” 기사의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노인은 버스에 올랐다. 뒤편 승객들에게 울리던 ‘삑. 감사합니다’란 기계음은 그에겐 허락되지 않은 인사였다. 기술이 바꾼 일상이 누군가에게 당혹감이 되는 순간은 그렇게 찾아왔다.

    서울시가 현금 없는 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한 것은 2021년 10월. 초기 8개 노선, 171대이던 현금 없는 버스는 올해 4월 기준 서울 시내버스(7383대)의 40%인 2942대까지 늘었다. 인천도 도입에 적극적이다. 버스마다 자동으로 현금과 카드를 함께 받는 통합요금기를 설치해 2009년부터 운영하던 인천시는 2022년 현금 수납 기능이 없는 새 단말기 도입을 결정했다. 카드로만 요금을 받는 시범사업도 함께 시작했다. 10년 넘은 기계가 잦은 고장으로 말썽을 부리자 교체에 나선 것이다.



    버스에서 현금 수납을 없애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운전기사 노동조합이었다. 현금을 받느라 출퇴근 시간 출입문 앞 혼잡도가 높아지는 데다 1만원 등 고액권을 내고 거스름돈을 달라는 승객과의 갈등도 빈번하다는 게 이들의 호소였다. 튀어나온 현금통에 부딪혀 승객들이 다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현금 없는 버스 확산에 도화선이 됐다. 운전기사와 승객 간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 감염병 전파 위험을 낮춘다는 이유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버스 내 ‘현금 결제’를 중단했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대전 대구 광주 등에서 도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제도가 전국 각지로 확산하자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카드를 잘 쓰지 않는 고령층은 물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무더위에 버스 카드를 사러 헤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스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야 하는 ‘시민의 발’이다. 공공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마저 진입장벽이 생겨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60대 이상 소비자 세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현금을 가장 선호한다는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카드가 없는 승객을 위해 계좌번호를 안내하는 지자체도 늘었지만, 금융 생활에 익숙지 않은 노인과 외국인에겐 이마저도 불편한 조치다.

    버스뿐 아니다. 거리마다 배치된 택시 승차장도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다. 스마트폰 앱에 서툰 노년층이 길거리에 서서 손 흔드는 것으로는 택시 한 대 잡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 인터넷 예매만으로 매진 세례가 이어지는 탓에 나이 많은 팬들은 야구 경기 표 하나 구하지 못한다는 소식은 이젠 낯설지 않은 얘기다.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은 ‘차 한 잔’ 주문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아 키오스크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서툴지만, 상점마다 설치된 키오스크는 카페와 식당을 넘어 은행, 공공기관 등으로 나날이 늘고 있다. 2021년 21만 대였던 국내 키오스크 설치 대수는 2023년 53만6602대로 2년 새 30만 대 넘게 늘었다. 일각에서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회자할 정도다.


    물론 디지털 기술은 꼭 필요하다. 빠른 데다 효율적이다. 누구나 들고 있는 ‘손 안의 컴퓨터’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도, 언어의 장벽도 허물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나날이 치솟는 인건비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자영업자에게 키오스크는 ‘구세주’가 된 지 오래다. 식당 테이블마다 설치된 결제 기능을 갖춘 단말기는 계산하지 않고 도망하는 ‘먹튀 범죄’ 위험까지 막아준다. 이런 기술은 모든 사람을 향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버스와 택시로 오가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의 몫이다. 버스마다 제한적으로 현금을 받는 ‘유연한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장애인과 고령층이 쉽게 접근하도록 글씨를 키우고 음성·점자 안내를 지원하는 ‘배리어프리’(무장애) 키오스크를 늘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런 변화가 ‘의무’가 아니라 당연한 ‘사회적 배려’로 자리 잡는 게 사회적 성숙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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